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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개밥바라기 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그러고 보면 시골집 마당에서 올려다보던 밤하늘은 그지없이 좋았다. 마치 뛰는 심장 같았다. 은하수는 보석을 뿌려놓은 듯했다. 저편 능선 너머로 별똥이 떨어질 때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친구 가운데는 언제가 꼭 한 번 별똥을 주우러 가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결국 그이도 이젠 다 자라버렸지만. 봄 산에는 새가 울고, 부드러운 꽃잎은 바람에 흩날렸다.

그 시절은 알프레드 드 뮈세가 시 ‘롤라’에서 썼듯이 “대지 위의 하늘이 / 신의 백성들 사이로 걸어 들어와 숨 쉬던 시절”이었고, “그때 모든 것은 신성했다. 인간의 고통까지도. / 그때 세상은 오늘날의 세상이 소멸시킨 것을 숭배했다.” 숲과 땅과 하늘과 사람이 타고난 그대로 온전하던 때였다. 내가 선 자리를 중심으로 별들이 내 머리 위를 사방으로 오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개밥바라기 별이 보고 싶어졌다. 그 별을 넋 놓고 보겠노라고 천문대에 간 적이 한 차례 있긴 했다. 그러나 그날은 구름이 많았다.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기 위한 대기 행렬의 처음에 섰던 아이는 별을 볼 수 있었지만, 행렬의 끝에 선 나는 결국 보지 못했다. 아이는 탄성을 지르며 내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부러웠지만 그날의 불행은 어쩔 수 없었다. 대신 그날 나는 한 장의 사진을 인상 깊게 보았다. 사진 아래에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제목과 함께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중략)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것은 1990년 무인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64억㎞ 떨어진 태양계 외곽에서 지구를 찍어 전송해 온 사진이었고, 그 사진에 대한 설명 글은 미국의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것이었다. 지구의 보잘것없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 큰 가치를 얻게 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지구가 “다른 많은 점들과 분간하기 어려운 외로운 한 개 픽셀(점)”이라니. 순간 나는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스스로 질문했다. 그 질문은 돌연한 것이었지만 불가피한 것이었다. 천체로 막 뻗어나갔던 생각이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처럼 이내 다시 내가 선 자리로 뚝 떨어졌을 때, 나는 잠깐의 충격적인 낙차를 경험했다. 곁에는 아이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를테면 이 놀랄 만한 우주적인 인연에 감사하면서.

주말에 다시 천문대에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서 가슴에 별을 심고, 별을 키워야겠다. 별의 바탕인 어둠을 보지 말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개밥바라기 별을 보아야겠다. 때마침 ‘100시간 천문학 행사’가 열리고도 있다니까.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