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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실업시대]4.제조업 고용 감소…'울며 겨자먹기'식 전업 많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아파트 경비원 자리 얻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습니다.

대졸 학력도, 30년 가까운 경력도 소용없습니다." 구직 희망자들이 몰리는 서울인력은행에서 만난 金모 (56) 씨의 하소연이다.

94년 대그룹 계열사에서 차장으로 퇴직한 그는 "처음 1~2년간은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기업체 임원.대학강사 자리등을 찾았으나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고 말했다.

金씨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척의 보증을 잘못 섰다가 퇴직금도 날린 이후 주유소 경리.아파트 경비등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안정된 직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직장에서 퇴직하는 사람들이 새로 취직하는 사람 수를 웃돌고 있다.

특히 산업의 기반이 되는 제조업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노동부 고용통계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에 새로 일자리를 얻은 입직자 (入職者) 의 수를 퇴직.전직등으로 제조업을 떠난 이직자 (離職者) 의 수로 나눈 입직.이직자 비율이 올 1~8월중 85.3%를 기록했다.

올들어 제조업에서는 1백명이 회사를 그만둘 때 85명만이 회사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나마 이는 7월에 상반기 신규채용자들이 들어와 수치가 다소 호전된 것. 올 상반기까지의 누계치는 84%로 93년 1월 이후 4년6개월만에 최저치였다.

이는 특히 93년 1월을 제외하면 80년 7월의 82.3%이후 가장 낮았다.

제조업이 호황을 구가하던 94~95년에는 이 비율이 1백%를 넘었었다.

회사를 나가는 사람보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 지속적으로 신규 고용을 창출했던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상전벽해 (桑田碧海) 인 최악의 상황이다.

거듭되는 대기업의 부도사태와 인력조정에 따라 방출된 인력들이 버티지 못하고 타업종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퇴출하면서 제조업의 고용능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을 떠난 이들 인력들은 어디로 가는가.

노동부 산하 중앙고용정보관리소의 경력직 근로자 이동현황 집계를 보자. 지난 9월중 직종을 바꾼 경력직 근로자 5만1천5백여명중에서 제조업 분야는 2만5천9백여명이다.

이중 다시 제조업 분야로 취업한 사람은 76.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도.소매업, 부동산임대및 서비스.운수.통신등 다른 산업분야로 직종을 옮겼다.

노동부 산하 서울인력은행의 오성욱 (吳晟旭) 연구원은 "성공적인 업종 바꿈도 있겠지만 제조업 분야의 고용 능력이 떨어지면서 '울며 겨자먹기' 로 타업종으로 밀리는 사람이 최근 많아졌다" 고 말했다.

직종을 바꾸면 경력등을 인정받지 못해 같은 직종간 이동보다 대우.근무환경이 열악해지기 쉽다.

서울인력은행의 구직자 명단에는 대기업등에서 임원.간부로 일하다 경비원등으로 취업하려는 구직자들이 적지 않다.

중앙고용정보관리소의 다른 통계에 따르면 지난 7~9월 3개월간 퇴직한 기업체 간부 4천90명중 다른 회사 간부로 재취업한 경우는 불과 52.7%다.

나머지는 일반직이나 서비스.판매직등으로 옮겼다.

이승녕·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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