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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 칼럼]동병상련과 와신상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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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화란 다름 아닌 경제의 통합이다.

사람들이 경제통합의 위력을 처음 목격한 것은 독일 통일후의 동독 경제의 궤멸이었다.

통일전의 동독경제는 동구권 최고의 생산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동독경제가 서독경제로 통합되자 그 생산시설은 거짓말같이 하루아침에 고철이 되고 말았다.

그것으로 생산한 것은 품질이 열악하고 값은 비쌌기 때문이다.

경제통합이 이뤄지면 품질이 가장 좋은 것, 값이 제일 싼 것만 살아 남는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잡아 먹히고 만다.

우리는 94년말 이른바 '멕시코사태' 가 일어나자 한국경제에도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똑같은 사태에 대해 감추기 힘든 공포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주 제1차 한국.멕시코 포럼에 참가해 멕시코국립대학 경제학과 알베레즈 교수의 주제발표를 들으며 '멕시코 사태' 자체가 세계화돼감을 느끼고는 소름이 끼쳤다.

동독.옛소련.멕시코.태국.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도 그 돌풍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하나의 재앙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젠 지진이나 엘니뇨 현상처럼 피할 수 없는 지구적 환경이다.

그것을 피하자면 북한처럼 폐쇄의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은 곧바로 기아로 연결되는 길이다.

94년 12월 멕시코는 한꺼번에 자국 통화를 50%나 절하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과 미국으로부터 긴급자금을 5백억달러나 꿔 급한 불을 끄는 수모를 겪었다.

멕시코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도 세계화 자체를 원망하는듯 보인다.

그리고 변덕스런 단기적 외국자금의 휘발성을 탓한다.

과연 '종속이론' 의 종주국 답게 악덕고리대금 전주 (錢主) 들을 정죄 (定罪) 하는데 집착한다.

비록 멕시코에 동병상련 (同病相憐)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지라도 본받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못된다.

더구나 세계 자금시장은 전자정보시대에 들어와 이자를 한푼이라도 더 받고 떼일 위험은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일념에서만 광 (光) 속도로 움직여 다닌다.

돈의 이런 변덕스런 습성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나 지금은 엄연한 현실이다.

대책은 여러 겹으로 마련돼야 한다.

첫째는 가장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누구보다 싸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는 경상수지의 균형을 철저히 유지하는 것이다.

경상수지 균형을 유지하려면 환율이 외환수급과 물가에 따라 즉시 변동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경상수지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투자수준이 국내저축 수준을 넘지 않게 유지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성장률을 국내저축 범위 이상으로 달성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자는 것이다.

물가가 상승하면 원화가 외환에 대해 즉시 평가절하되게 해야 수요가 거품현상을 빚는 일이 없어진다.

이것은 고도성장에 길들여진 한국경제로서는 와신상담 (臥薪嘗膽) 이다.

빚을 안내는 경제라면 아무리 변덕을 부리는 빚쟁이라도 수모를 줄 도리가 없다는 것을 한국경제의 전략적 기초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중진국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겹 보험을 더 들려면 은원 (恩怨) 을 가리지 말고 이나라 저나라와 통화안정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좋다.

국제통화기금 외에도 동아시아통화기금등의 설립을 서두르고 거기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살고봐야 한다.

경쟁력 있고 부가가치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게 되는 날도 이런 와신상담 속에서라야 오게 된다.

세계화시대에 상품이나 서비스 교역에 장벽을 높일 수는 없으나 빚을 안 얻어 쓸 만큼 살림을 짭짤하게 하는 것을 두고 시비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미국 같은 나라도 인플레이션이나 국제수지적자에 허덕이게 될 날이 올 수 있다.

지금 국제적 자금의 변덕을 원망하는 것보다 그때가 오면 "거 참, 시원 고소하다" 고 말하는 쪽이 조금은 나을 것 같다.

강위석 논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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