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 아버님, 어머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6면

 어버이날이면 부르는 노래가 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자식을 잉태한 어머니가 그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의 고생스러움이 진하게 그려져 있는 곡이다. 노랫말의 상당 부분은 불가(佛家)에 전해져 내려온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내용과 흡사하다.

이 경전에 나오는 부모의 은혜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강보 속의 아기를 마른자리에 눕히고 본인은 아무 곳이나 마다하지 않는 희생의 정신, 평생토록 자식의 안전을 염려하며 애태우는 부모의 수고로움을 담았다.

단것은 뱉어 자식에게 먹이고, 쓴 것은 스스로 삼키는 절대적인 사랑도 보인다. 석가모니는 그렇게 커다란 부모의 은공을 갚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불경의 기록을 더듬지 않더라도 부모의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크기라는 것은 지구 위의 생각 있는 존재라면 다 알 수 있다.

동양의 묵자(墨子)는 부모에 대한 공경을 겸애(兼愛)로 풀었다. 남의 부모도 내 부모처럼 여긴다면 세상의 평화를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묵자의 사상을 관통하는 ‘너와 나의 합일’ 정신이다. 동양판 박애(博愛)주의의 효시로 볼 수 있다.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이은 맹자(孟子)는 이에 대해 공격을 퍼붓는다. “묵가의 겸애는 자신의 부모를 부정하는 것으로, 아비와 임금이 없는 이는 차라리 짐승”이라는 식의 비판이다. 맹자는 “내 부모를 잘 모신 뒤 남의 부모에게까지 그 공경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섣부른 박애주의 대신 나에서 시작해 남에게 미친다는 뜻의 ‘추기급인(推己及人)’이 옳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맹자의 말이 훨씬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가족 중심주의의 틀을 2000년 이상 유지하면서 가족 이기주의에 깊숙이 함몰해 온 동양사회의 자화상을 보면 묵자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유교(儒敎) 중심의 가치관에 눌렸지만 드물게 박애의 정신을 펼쳤던 묵자는 매우 진지했던 사상가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배가 지긋한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 ‘아버님, 어머님’으로 바뀌고 있다. 남의 부모도 내 부모로 생각한다는 호의가 담긴 호칭이다. TV 진행자들이 즐겨 사용하던 것이 어느덧 사회 전반에 넓게 자리 잡아 가는 분위기다.

호칭의 인플레이션으로 이를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내 곁을 남에게 내주는 데 인색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일단 반갑다. 호칭에 머물지 않고 거기에 진정성을 더한다면 좋겠다. 너와 내가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의식의 발로일 수 있으니까.

유광종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