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행복추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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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후에 미국 3대 대통령에 오른 토머스 제퍼슨은 29세 때 스켈턴이란 23세의 청상과부와 결혼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였을 뿐만 아니라 재산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들 부부는 슬하에 1남5녀를 두었으나 딸 둘만 어른으로 성장했을 뿐 모두 어려서 죽었다.

부인도 결혼한지 10년만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는 39세 때 일약 거부로 등장했다.

부인덕에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는 등 안락한 삶을 누리며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제퍼슨은 그것을 '진정한 행복' 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26세 때 버지니아 주민회의 의원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딘 다음 32세 때 대륙의회 의원이 되면서 그는 미국의 독립을 꿈꿨고, 인간의 '기본적 행복' 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이듬해인 1776년 6월 그가 독립선언문 기초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된 것은 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제퍼슨이 독립선언문을 기초하면서 역점을 둔 것은 '생명.자유 및 행복의 추구' 라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반영하는 일이었다.

그는 선언문에서 그같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선 독립된 정부가 존재해야 하며 정부의 정당성은 '피치자 (被治者) 의 동의' 로부터 유래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사상적 배경은 "행복이란 궁극적이며 지고지상의 선 (善) 으로서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목표가 된다" 는 동.서양을 막론한 도덕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감명 깊은 '정치적 문서' 로 평가되면서 거의 모든 나라들이 기본법에서 '행복추구권' 의 조항을 두고 있는 것도 그 까닭이다.

우리나라헌법도 '행복추구권' 을 보장하는 조항 (제10조) 을 두고 모든 국가기관은 물론 개인도 타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행복추구권은 알게 모르게 침해받기 일쑤다.

침해하는 행위의 당사자도 작게는 개인으로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침해를 받고도 어디에 하소연해야 좋을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처럼 생긴다.

의료사고로 불구가 됐을 경우 요양비 외에 행복추구를 위한 생활비용도 물어줘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은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행복추구권' 에 대한 새삼스러운 일깨움이다.

국가나 정부로부터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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