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크라이슬러 ‘죽느냐 사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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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동차 회사 ‘빅2’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파산이냐 회생이냐를 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지난달 30일 업계의 추가 지원금 요청에 퇴짜를 놓은 미국 정부는 GM에 60일, 크라이슬러엔 불과 30일이라는 대책 마련 기간을 허락했다. 두 회사 모두 그때까지 만족스러운 수준의 구조조정안을 가져오지 못할 경우 더 이상의 지원을 끊겠다고 엄포를 놨다. 사실상 최후통첩인 셈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는 단호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 외신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정부 지원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동차 산업을 납세자들의 돈에만 무한정 의존하며 생존시킬 수는 없다”며 파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고 전했다. 노조·채권자 등 두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파산도 가능=미국 정부는 GM에 두 달 안에 새로운 비용 절감 계획에 대해 채권자와 노조의 동의를 얻어 오라고 지시했다. 크라이슬러에는 추진 중인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와의 제휴를 한 달 안에 마무리 지으라고 했다. 이 결과를 보고 추가 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요구를 맞추지 못한 회사는 자금줄이 끊겨 파산에 이를 수밖에 없다.

WSJ는 일단 두 회사의 파산 신청을 유도한 뒤 회사를 ‘굿-배드(Good-Bad)’ 부문으로 쪼개 처리하는 방안을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31일 보도했다. GM의 경우 시보레·캐딜락과 일부 해외 브랜드로 구성된 ‘굿 GM’만 남겨 독립 법인으로 존속시키고, 크라이슬러도 ‘굿 크라이슬러’만 피아트에 매각하는 식이다.

한편 이런 정부의 강공이 ‘공갈(Bluffing)’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31일 영국 런던 UBS의 애널리스트 스테펀 푸에터의 말을 빌려 “오바마 대통령이 노조와 채권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양보하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각계 반응=일단 GM의 채권자들은 정부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지근하게 추진된 구조조정이 드디어 탄력을 받게 됐다는 반응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크라이슬러의 로버트 나델리 최고경영자(CEO)는 정부 발표 직후 피아트와의 제휴가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정부의 단호한 태도에 당황하는 분위기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시간 지역 노조원인 돈 톰슨(56)은 “금융권에 대한 비난 여론의 역풍을 자동차 산업이 맞았다”며 “워싱턴에서 자기들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치권에선 파산 절차가 시작되더라도 자동차 소비가 줄지 않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의회는 연비가 좋은 신차로 교체할 경우 대당 3000~5000달러의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하고 있 다.

◆은행엔 당근, 자동차엔 채찍=미국 정치 일간지 폴리티코는 오바마 정부가 금융권보다 자동차 산업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이날 ‘왜 은행들엔 당근을 주고 자동차 기업엔 채찍을 드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제시한 이유는 다섯 가지다.

첫째, 정부가 은행들을 더 믿는다는 것. 위기를 극복할 리더십 면에서 자동차 산업보다 금융권 경영진을 더 높게 평가한다는 이야기다. 둘째, 국민에게서 거둔 세금으로 자동차 산업을 지원했다가 물릴 위험이 크다. 연봉 제한 등 경영 간섭을 할 움직임이 보이자 벌써 구제금융 자금을 되갚겠다고 나서는 은행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셋째, 한두 자동차 회사가 망해도 미국 경제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형 은행이 파산하면 재앙이 닥칠 수 있다. 넷째, 미국 차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 도요타가 미래를 내다보고 연비 높은 차를 개발할 때 GM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투자하는 ‘황당한 도박’을 했다. 마지막으로 국민은 채찍을 원한다. 이미 정부의 금융권 지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국민이 많으므로 이참에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권혁주·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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