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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100회 맞은 ‘보라매 모여라 북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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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이 모임은 이규원(6·중대부초1)군의 엄마 신현주(44)씨가 주축이 돼 서울 관악구 보라매동에 사는 엄마 7명이 만들었다. 2006년 말 시작됐으니 2년이 넘었다. 엄마가 선생님이 돼 직접 자녀의 책 읽기를 돕는다. 교육 커리큘럼과 독후 활동 프로그램 모두 엄마들이 만들었다. 중국 칭다오에서 이 콘텐트로 북클럽을 운영하는 엄마들도 있을 정도다. 신씨는 “부모가 선생님이 되면 사교육비를 줄이고 아이의 인성교육도 놓치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부모를 존경하게 된다”고 말했다.

“발표상 받으면 반장 시켜줘요”

오후 6시30분. 수업이 시작되려면 30분이나 남았지만 아이들이 가슴에 책 한 권씩을 안고 급하게 신씨의 집 현관을 들어섰다. 2년 넘게 매주 목요일이면 찾아오는 익숙한 교실이다. 7시가 되자 금방까지 뛰어놀던 아이들이 제 책을 찾아 자리에 둘러앉았다. 엄마 선생님 신씨가 자리에 앉자 지난주 발표상을 받은 안군이 일어섰다. 수업이 끝나고 발표상을 받으면 다음 시간의 반장이 된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신씨가 오늘 읽을 책은 『마법의 저녁식사』라고 소개한 뒤 영해부터 읽게 했다. 한 페이지를 읽자 옆에 앉은 이필규(7·중대부초2)군이 다음 페이지를 이어간다. 7명의 아이는 돌아가면서 책을 읽었다. 신씨가 책 내용에 대한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시골에 가면 뭘 하고 놀아요?”

황순민(7·당곡초1)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신씨가 말하라고 할 때까지 기다린다. “산에 올라가요.” 신씨가 다시 묻는다. “심심해 하는 아이에게 어떤 마술을 걸면 좋을까.” 영해는 인조인간을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수업 중간중간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얘기를 조용히 들을 것, 말하려는 대답이 같으면 다시 말할 필요는 없다는 등의 조언을 했다.

아이들은 서로 발표를 하고 싶어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손을 들었다. 김현정씨는 “동기 부여를 위해 작품상·발표상·자세상을 뽑는데 상품을 주니까 수업 전 책도 10번 이상 읽고 발표도 굉장히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책을 읽고 토론을 마치면 특별 활동을 한다. 이날은 풍선을 이용해 상상해서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했다. 책 내용이 초현실주의적이라 그림도 상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것이 신씨의 말이다.

“1년 넘게 기다려 가입했어요”

신씨가 이 모임을 만들게 된 건 아들 규원이 때문이었다. “당시 아이가 사회성이 너무 부족했어요. 외국에서 유대인 교육을 공부하던 규원이 삼촌이 권했어요. 유대인들이 노벨상의 20~30%를 받는 비결은 부모가 선생님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시작은 쉽지 않았다. 북클럽을 만들어 부모가 지도하는 데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할 수 없이 머리를 맞대고 직접 북클럽의 포맷을 만들고, 교육 커리큘럼과 독후 활동 프로그램을 짰다. 길에서 만나면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서서 고민을 할 정도였다. 박정미(34)씨는 “처음에는 책을 선정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여기저기서 내놓은 권장 도서 리스트는 왜 그리 많은지…”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재미와 교훈이 있어야 하고, 그림은 예쁘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수업 진행도 엄마들과 의견을 나눴다. 신씨는 “책 내용을 이해하는 문제를 뽑고, 아이들이 책 내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상력을 발휘하고 자기 의견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문제를 뽑는 일은 지금도 쉽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지금 이 모임은 동네에서 인기다. 지금도 대기자가 10명이 넘는다. 김현정씨는 “인원은 정해져 있고 한번 가입하면 탈퇴하지 않으니 누가 이사 가기 전까지는 들어올 수 없다”며 “우리 아이도 1년 넘게 기다려 가입했다”며 웃었다.

엄마들은 각자 역할 맡고 할머니도 나서

이공계를 전공한 엄마도 아이의 책 읽기를 도울 수 있을까. 신씨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역할을 나누면 된다. 독서에 자신 없는 엄마들은 만들기나 그리기, 요리 등의 독후 활동을 책임지거나 그것도 안 되면 활동이 끝난 뒤 뒷정리라도 하면 된다. 이경미(35)씨는 자신이 청소 담당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책을 선정할 때 우선 아이의 연령에 맞아야 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읽고 나면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면 좋은 책”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섭렵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도 중요한 고려사항. 동화책에서는 그림도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너무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라든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아이들은 호감을 느낀다. 신문이나 인터넷 서평, 작가의 성향과 출판사의 특징을 알면 도움이 된다.

아이들에게는 책 읽기뿐만 아니라 독후 활동이 또 하나의 흥밋거리다. 예컨대 『떡 잔치』라는 책을 주제로 했을 때는 특별활동으로 직접 떡을 만들어 본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참여할 수 있다. 규원이 할머니 임후미(77)씨는 아이들이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라는 책을 읽을 때 직접 팥죽을 쒀주고, 팥죽을 먹는 풍속의 유래에 대해 특강을 했다.

이들은 그동안 쌓아온 콘텐트를 온라인 카페(http://cafe.daum.net/dongwhabook)에 아낌없이 공개했다.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책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신씨는 “자녀의 교육을 하고 싶지만 정작 하려고 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찾아 하는 엄마들은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다.

북클럽 엄마들도 독서지도사들이 훨씬 체계적으로 책을 고르고 능수능란하게 수업을 이끌어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내 아이의 사고 발달 정도에 맞는 책을 직접 고르고, 함께 책을 읽는 방법을 통해 아이들의 사고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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