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통술 '막걸리', 일본 여성 입맛 사로 잡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7일 서울 명동의 한 부침개집. 10여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들어왔다. 일부 관광객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눌한 한국말로 “맛코리(マッコリ) 주세요”라고 외쳤다.

도쿄에서 온 미유(22)씨는 “일본에선 막걸리에 사과나 딸기주스를 섞어 칵테일로 마셨는데 여기서는 빈대떡과 함께 먹으니 신기하다”며 “일본에서 먹어본 것보다 걸쭉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일행인 아스미(24)씨도 “한국에 왔으면 당연히 민속주를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달착지근한 막걸리 맛이 좋아 돌아갈때 선물용으로 사가야겠다”고 말했다.

일본 관광객의 ‘막걸리 사랑’이 뜨겁다. 막걸리는 10여년 전부터 일본인에게 각광받는 술로 성장해 왔다. 서울탁주제조협회 이공흠 상무는 “막걸리는 일본 현지에서 고급술로 자리잡고 있다. 요즘엔 엔화 강세로 한국에 온 일본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것 같다”며 “한국만의 막걸리 분위기를 접하기 위해 종로나 명동 인근의 파전집이 인기”라고 전했다.


◇원산지 왔으니=한국에 왔으면 ‘한국식 막걸리 문화’를 맛봐야한다는 생각이 일본 관광객을 지배하고 있다. 일본에선 막걸리가 고급스럽게 포장돼 고가의 술로 팔린다. 1리터짜리가 마트에서는 800엔(약 1만2000원), 술집에서는 1000엔 정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50엔에서 200엔이면 살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의 전통 주막식 분위기에서 막걸리를 맛보는 것 자체가 이색 경험이 된다.

일부 여행업체는 서울 투어 일정표에 ‘막걸리집 탐방’을 옵션으로 넣는다. 이공흠 상무는 “수출용 막걸리는 살균처리가 돼 한국에서 팔리는 생 막걸리와 맛이 다르다”며 “이 때문에 현지 막걸리를 직접 맛보자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심 공략=막걸리는 특히 일본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데다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들어있어 장 운동에 도움을 주는 약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동재팬’ 사장인 김효섭(47) 씨는 지난해 말 한 세미나에서 “한꺼번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일본인, 특히 여성들을 집중 공략해 막걸리 시장을 확장했다”며 “트림이 나오는 막걸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현지 인기=막걸리의 인기는 일본 현지에서도 뜨겁다. 일본의 번화가인 신주쿠, 긴자, 이케부쿠로, 시부야, 우에노 등에는 20종류가 넘는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바(bar)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993년 일본지사를 설립한 이동주조의 이진성 과장은 "지난 한해 일본에서 34억여원어치의 막걸리를 팔았다"며 “매년 20~25%의 매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도쿄 인근 지바현 마쿠하리에서 열린 ‘2009 도쿄 음식박람회장’에는 막걸리를 맛보고 수입하려는 일본 바이어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들 중 일부는 아예 한국에 들어와 직접 막걸리를 구입하기도 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 수출된 막걸리는 모두 4891톤으로 전년 대비 25.4%, 금액으로는 402만6000달러(약 60억원)로 53%가 늘었다.

◇한류 윈윈=일본에 진출한 한류스타와 엔터테인먼트도 막걸리 홍보에 나섰다. SM엔터테인먼트 일본 현지법인 SM재팬은 2007년 말 도쿄에 한국음식점 ‘포도나무’를 열었다. 여기에선 식전주로 막걸리가 무료로 제공된다. SM엔터테인먼트의 권용기 외식사업 팀장은 “살얼음이 뜬 막걸리를 식사 전에 제공하니 일본인들이 좋아한다”며 “보아나 동방신기가 왔다갔다는 스타마케팅과 함께 식전주를 홍보하니 단골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나고야에 전통술집 ‘고시레 화(火)’를 오픈한 ‘욘사마’ 배용준은 최근 국순당과 함께 ‘고시레 막걸리’를 개발해 지난 28일부터 일본 전국의 식품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엔화 강세=100엔당 원화 가치가 1500원을 넘어서는 등 엔화 강세로 일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급증한 것도 ‘막걸리 열풍’의 한 이유다.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1월 방한한 외국인 관광객을 분석한 결과 일본인 관광객은 23만7816명으로 지난해 1월보다 50%이상 늘었으며 전체의 39.1%를 차지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중 하나로 막걸리를 선택했다.

이지은 기자

▶[관련기사] 막걸리, 불황속 '나홀로 호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