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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비 지출 변화…의식주 줄고 문화비 늘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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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생활비의 씀씀이가 크게 변하고 있다.

중학교에 다니는 두딸을 둔 이혜정 (39.서울동작구상도5동) 씨의 지난 10월 가계부를 한 번 보자. 매달 두딸의 호출기 사용료 2만원에다 올해초 남편이 구입한 휴대폰 이용료 5만원, 컴퓨터통신 사용료 3만원을 합쳐 통신비 명목으로 지출되는 돈이 15만원을 넘어섰다.

국제화 영향때문인지 해외에 나간 친지가 늘어나 국제전화가 잦아진 탓에 최근들어 전화요금만도 매월 4~5만원에 육박한다.

불과 3년전만 하더라도 전화비 2~3만원정도 지출이면 그만이었던 통신비가 이제는 무시할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 이처럼 과거에는 별로 돈 들 일이 없던 항목의 지출이 크게 늘거나 또는 반대로 줄어드는 항목이 생기는 식으로 가계지출 구성비가 변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이씨만의 일이 아니다.

결혼 9년째인 김인경 (32.서울송파구방이동) 씨의 가계부에는 외식비가 큰 몫을 차지한다.

지난 10월에는 24만7천원이나 외식비로 쓰였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3년전 부터 거의 일요일마다 외식을 해오고 있는 그는 "처음에는 1인분에 몇천원 수준의 식사를 하면서 '일가족 외식' 이라는데서 의미를 찾았었는데 점차 분위기 좋은 곳을 가다 보니 고급식당에 가는 일이 많아진 탓" 이라고 설명한다.

성혜영 (47.서울서초구잠원동) 씨의 가계부를 보면 지난 1년간의 여행경비가 3백만원정도. 5년전만해도 여행이라고는 여름휴가때 산이나 온천등에 다녀오는 것이 고작이어서 여행비가 50~1백만원선에 불과했었는데 해외여행 '맛' 을 본 이후 거의 매년 이정도가 지출되고 있다.

그는 "제한된 수입안에서 한 항목이 크게 늘다보니 의류구입비나 가사도구 구입비등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고 말했다.

4백만원에 육박했던 연간 의류구입비는 그 절반수준으로 줄었다.

물론 큰 아이가 군대에 가서 식구수가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씨가 의도적으로 의류구입비를 줄이는 것도 큰 몫을 한다.

의식주의 생활필수 항목의 지출비율이 점점 낮아지면서 문화비 부문의 지출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통신비만 하더라도 81년까지는 통계청에서 집계하는 가계지출 항목중 '잡비' 에 들어갔던 소소한 부분이었던 것. 그러나 올해 분기 통신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3.3%나 증가했다.

70년대 총소비지출의 1%에도 미치지 못했던 외식비도 90년에 곡류구입비를 앞지른 이후 올해 분기에는 11.7%를 차지했다.

이는 우리네 가정생활이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 정순희교수는 "편의지향적인 사고방식과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여가를 즐기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 으로 진단한다.

이러한 소비생활의 변화에 대해 대한주부클럽연합회 김천주회장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후 삶을 질을 생각하며 소비생활을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향락위주 과소비를 막기 위해서는 '혹시 과시형 소비는 아닌가' '실질적인 일인가' 등을 매번 점검해 나가는 생활자세가 필요하다" 고 말하고 "가계부등 생활비 지출을 꼬박꼬박 적어나가는 것은 객관적으로 이를 판단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고 충고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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