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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타워의 '스파이더 맨' 김준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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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타워 지붕 위에서 101미터 높이의 철탑을 올라 갔다가 내려오는 데만 정확히 1시간이 걸립니다. 처음에는 한번 오르내리면 다리가 풀려서 고생했습니다.”

케이블 채널 YTN의 타워운영팀 김준형(30·사진)씨는 서울타워 철탑을 맨손으로 오르내리는 ‘스파이더 맨’이다. 그는 해발 479.7미터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항공장애등을 관리하는 엔지니어다. 항공장애등은 야간에 고층 건물이나 시설물 꼭대기에 깜빡거리는 적색등으로 밤에 운항하는 항공기에게 고층 시설물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등이다. 서울타워 정상의 철탑에는 총 9개의 항공장애등이 있다. 이 등을 유지보수 하는 일이 김씨의 몫이다.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전문대에서 전기를 전공한 그는 2007년부터 서울타워 항공장애등을 관리하고 있다. 서울타워 꼭대기의 철탑은 TV와 라디오 방송을 수도권에 보내기 위해 1969년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전파탑이다. 이 탑에는 KBS, MBC, SBS 등 3대 공중파와 국악방송과 교통방송 등 총 5개의 방송사의 송신 안테나가 설치돼 있으며 전국 방송청취 인구의 절반 가량을 커버하고 있다. 또 소방방재청, 서울지방경찰청의 업무용 안테나도 설치돼 있다.

김씨는 일주일에 한 두 번 철탑에 올라가 장애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 강풍에 안테나의 볼트가 풀린 곳은 없는지를 확인한다. 먼저 타워 아래에 있는 사무실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타워 정상까지 오른뒤 철탑은 기어서 올라간다. 철탑 밑부분 중 3분의 1구간은 철계단을 이용해 오르지만 나머지 3분의 2 구간은 폭 1미터도 안되는 사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수직 사다리를 기어 오르다 보면 손에 땀이 나 면장갑이 땀으로 젖는다. 바람이 심할 때는 사다리도 흔들려 익숙해진 거도 불안을 느낀다.

“처음 올라간 날은 겁도 나고 손이 떨려서 30분이면 끝낼 일을 1시간 30분 동안 작업을 했어요. 2인 1조로 일하는 데 바로 밑에 있던 동료 직원이 마음을 진정하라고 찬송가를 불러 주기도 했어요.”

아직 미혼인 그는 “떨어지면 어쩌지. 이러다 총각귀신 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 뿐이었어요. 요즘도 어머니는 철탑에 올라가기 전에 우황청심환을 꼭 챙겨 먹고 올라가라고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철탑에 오를 때는 안전모와 추락방지 장구, 장갑, 바닥이 미끄럽지 않는 안전화를 착용해야만 한다. 지갑이나 동전 등 소지품은 일절 갖고 올라갈 수 없다. 작업 중 작은 물건이라도 떨어뜨려 관광객들을 다치게 할까봐서다. 그래서 작업용 장구도 하나 하나 끈으로 묶어 허리띠에 차고 올라간다.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다 보니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김씨는 주말마다 인라인스케이트와 탁구를 하면서 체력을 단련한다고 소개했다.

3형제 중 둘째인 그는 형과 동생도 모두 전기 관련 일을 한다고 전했다. 까마득한 철탑을 오르내리는 그지만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은 무서워 못탄다고 귀띔했다.

철탑에 오르면 서울시 전경은 물론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인천 앞바다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풍경은 ‘한강’이다. “고요한 한강을 보면 제 마음도 고요해집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철탑에 올라 제 발 아래 서울이 있다고 생각 하면 쾌감을 느낍니다. 국내 방송사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시설물을 내 손으로 관리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기술직에 대한 사회 인식이 좋아지고 처우도 좋아지면 좋겠다”라고 소망을 말했다.

글·사진=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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