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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안방극장 도전…KBS2 '은비늘' 오늘 방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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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우리 현실에서 '동성애' 는 금기사항중 하나다.

분명 존재하고 있는 현실인데도 애써 외면하고 덮어두려 한다.

그래서 그 이중성은 오히려 상품으로서의 존재가치가 되고 있다.

동성애를 그린 영화들이 오히려 더 인구에 회자되고 이를 다룬 영화제까지 마련됐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고보면 왕자웨이 (王家衛) 감독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는 결코 '불발탄' 이 아니었던 셈이다.

화두 (話頭) 로서의 동성애를 우리 사회의 광장으로 끌어내며 산화하는데는 성공했으니까. 그 파편이 튄 곳은 바로 TV다.

하지만 공공성이 강한 TV의 성격상 동성애는 역시 껄끄러운 소재였나 보다.

당장 오늘만 보더라도 거의 같은 시간대에 방영될 예정이었던 동성애를 그린 두편의 드라마중 한편이 갑작스레 도중하차 당했다.

사회적 금기에 대한 벽이 아직 높다는 얘기. 우선 7일 밤9시45분 KBS2TV로 방영되는 금요극장 '은비늘' (극본 유갑열.연출 최지영) 은 성폭행을 당해 남성을 기피하게 된 여인이 동성친구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야기다.

청소년시절부터 성폭행을 당해온 혜라는 늘 자신을 감싸주던 대학친구 인희로부터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졸업후 결혼해버리는 인희를 보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어느날 가난에 찌들린 모습으로 나타난 인희를 보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강박관념에 빠져드는 혜라는 급기야 인희의 남편을 유혹하기에 이른다.

아픔을 간직한 잡지사 편집부원 혜라는 노경주가, 그의 가까운 대학친구 인희는 이주경이 맡는다.

여성사이의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영상으로 꾸며낼지 주목된다.

한편 당초 7일 밤8시50분 SBS 70분 드라마로 예정됐던 '숙희.정희' 는 빠지고 대신 '1997 라이프' 가 방영된다.

'숙희.정희' 는 예민한 성격의 만화출판사 교정원 숙희와 털털한 마을버스 운전기사 정희가 우여곡절끝에 자신들의 '사랑' 을 방해하는 세상의 시각을 뒤로하고 '델마와 루이스식' 결말을 맞게된다는 사이코 스릴러. 하지만 SBS측은 "자체심의 결과 이번 가을개편으로 본격적인 '가족채널' 로의 이미지 변신을 꾀하려는 SBS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는 이유로 전격 변경을 단행했다.

이미 시청자들에게 화려한 예고편까지 수차례 방영했던 SBS로서는 사회적 금기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시청자들로서는 사회의 금기에 도전하는 이 드라마들이 단순한 상업적 소재주의 드라마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금기를 깨뜨리는 망치로서의 역할을 해낼 것인지 비교할 기회를 절반은 놓친 셈이다.

동성애는 광장으로 끌려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납작 엎드려 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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