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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들 쓰러질 때 10억 달러 넘게 벌어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헤지펀드 매니저들에게 2008년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리먼브러더스 등 투자은행 파산에 쏠려 있는 사이 헤지펀드들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파산하거나 제3자에게 넘어갔다. 전체 자산 1조7450억 달러 가운데 18%인 3141억 달러(약 440조원)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헤지펀드 위기’로 불렸던 1998년 롱텀캐피털 파산 사태나, 인터넷 거품 붕괴 직후인 2002년에도 그만큼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아래 그래프). 2008년이 헤지펀드 역사상 최악의 한 해로 불리는 이유다.

금융시장은 평등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글로벌 헤지펀드 업계가 죽음을 넘나들던 지난해에도 수입 10억 달러(1조4000억원)를 넘긴 사람이 4명이나 탄생했다. 제임스 사이먼스(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 존 폴슨(폴슨펀드), 존 아널드(센토로스), 조지 소로스(소로스펀드) 등이다. 이들은 지난해 70억 달러(10조원)를 벌어들였다. ‘헤지펀드 4대 거성(Giant Star)’이라 불릴 정도다.

그 가운데 사이먼스가 가장 빛난다. 그는 메달리언 등 펀드를 운용해 2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2007년 28억 달러보다는 3억 달러 줄어든 것이지만 손해를 본 펀드 매니저들이 수두룩한 것과 비교하면 그의 성과는 탁월하다고 할 만하다.

사이먼스는 수학자 출신이다. 76년 미국 수학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수학자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뒤 그는 홀연 학계를 떠나 월스트리트에 뛰어들었다. 헤지펀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른바 ‘퀀트(Quant)’로 분류된다. 퀀트는 수학을 활용해 컴퓨터 투자 모델을 구축해 머니 게임을 벌이는 사람이다. 그는 온갖 변수를 반영해 리스크를 관리하기 때문에 위기에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지난해뿐 아니라 90년 이후 처음으로 헤지펀드 업계가 전체적으로 손실을 기록한 2002년에도 높은 실적을 자랑했다. 현재 그가 운용하는 자산은 300억 달러 수준이다. 여기에는 그의 개인 자금 50억 달러가 들어 있다.

냉정한 수학을 활용한 사이먼스와 달리 존 폴슨은 육감에 의존해 지난해 20억 달러를 벌어들여 2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해 월가 금융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공매도했다.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일정 기간 뒤 건네주기로 하고 파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그의 매도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이익을 보게 된다. 그는 한 해 전에도 공매도 게임을 벌였다. 2007년 부채담보부증권(CDO) 값이 폭락할 것으로 보고 공매도해 300%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3위 존 아널드는 분식회계 사건으로 파산한 엔론의 에너지 트레이더 출신이다. 지난해 그가 번 돈은 15억 달러다. 그는 천연가스 가격의 급변동을 정확하게 예측해 성공을 거뒀다. 천연가스 값이 급등했다가 추락하는 시점을 정확하게 맞힌 것이다. 그는 헤지펀드 업계 신출내기다. 올해 34세다. 엔론이 파산하기 직전인 2000년 그는 보너스로 800만 달러를 받았다. 엔론 파산 이후 그는 이 돈을 종잣돈으로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지금 그가 운용하는 펀드 자산은 30억 달러 수준이다.

조지 소로스는 11억 달러를 벌었다. 2007년 29억 달러를 번 것엔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이는 케네스 그리핀(시타델투자그룹)이나 스티브 코언(SAC 캐피털) 등 헤지펀드 업계에서 관록을 자랑하는 플레이어들이 대거 몰락한 와중에 벌어들인 것이다. 소로스로선 체면은 유지한 셈이다. 그는 중국과 인도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보고 베팅했다가 적잖이 손해를 봤다. 다행히 영국 금리가 떨어진다는 쪽에 베팅해 큰돈을 벌었다. ‘역시 소로스는 영국 시장에 강하다’는 평이 사실임을 보여 준 셈이다. 그는 92년에도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쪽에 베팅해 이를 막으려는 영국 정부를 이기고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들이 앞으로도 고수익을 낼 수 있을까. 월가에선 ‘헤지펀드 황금시대는 갔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우선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헤지펀드에 족쇄를 채울 계획이다. 헤지펀드가 국제 원유가 등을 놓고 과도하게 베팅하는 것을 제한할 예정이다. 조세 피난처를 활용해 세금을 적게 내는 일도 어려워진다. 49년 처음 등장한 이후 60년간 승승장구했던 헤지펀드에는 고난의 시절이 예고되고 있는 셈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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