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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40주년 의의? “유니폼에 물어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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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엔 ‘Throwback Jersey(메리야스 직물을 되던진다)’라는 독특한 마케팅이 있다. 복고풍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펼치는 행사다. 오랫동안 구단을 응원한 팬에게 보답하자는 취지다. 쉽게 말해 고객사랑 환원 마케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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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단이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생팀은 엄두도 못 낸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구단만 가능하다. 올드팬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유니폼이 없기 때문이다. ‘Throwback Jersey’ 마케팅에는 올드팬에게 보답한다는 의미 외에 구단의 전통을 뽐낸다는 뜻도 있다.

반세기 가까운 역사·미래 한눈에 … 1970년 혁신기 땐 미니스커트도 입어 #유니폼에 숨겨진 대한항공의 역사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이 고객과 함께 떠나는 ‘추억의 하늘 여행’ 이벤트를 마련해 화제다. 객실승무원들이 역대 11종의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이를테면 ‘Throwback Jersey’ 마케팅이다. 20여 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된 ‘추억의 하늘 비행팀’은 3월 16일 LA를 출발해 도쿄·싱가포르·베이징·홍콩·시드니 등 해외 주요 도시 및 국내선에 탑승한다.

이 팀의 정현수 승무원은 “추억의 하늘 비행팀은 오늘의 대한항공이 있게 해 준 고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강훈 객실승무원 상무는 “유니폼에는 대한항공의 과거사가 담겨 있다”며 “추억의 유니폼을 입고 진행하는 이번 행사는 대한항공의 40주년을 고객과 함께 회상하고, 이를 발판으로 또 다른 미래를 열기 위해 마련됐다”고 전했다.

그렇다. 유니폼은 단순한 옷이 아니다. 회사의 문화와 전통을 상징한다. 이강훈 상무의 말처럼 유니폼을 보면 대한항공의 성장 역사와 희로애락이 읽힌다. 누적적자 27억원, 아시아 지역 11개 항공사 중 실적 꼴찌, 잦은 고장과 결항으로 땅에 떨어진 신뢰…. 1969년 대한항공공사의 성적표다. 회생마저 불투명했던 이 공사를 인수한 기업은 한진그룹.

복고풍 유니폼 행사에 숨은 뜻

조중훈 당시 회장은 “대한항공공사의 인수는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이라며 공기업 인수를 반대하는 임원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 역시 손익계산서를 철두철미하게 짜야 하는 기업인. 눈덩이처럼 쌓여 있는 부실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조중훈 회장은 부실경영을 개선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69년 9월 28일 대형 4발 제트기인 B720 항공기를 도입한 것은 혁신을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낡은 이미지의 유니폼도 손봤다. 당시로선 파격에 가까운 다홍색 치마를 사용했고, 유행이었던 노 칼라도 접목했다(1기 유니폼).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이듬해엔 미니스커트 유니폼(2기)도 선보였다.

유니폼으로 본 대한항공의 모토는 혁신과 신선함이었던 것이다. 1971년, 대한항공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실을 어느 정도 털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파란 날개’를 활짝 펴고 세계로 비상하는 것뿐이었다. 이를 위해 태평양 횡단은 반드시 이뤄야 할 숙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객선이 태평양을 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1972년 4월 19일, 대한항공은 새 역사를 만들었다. 서울~도쿄~호놀룰루~LA에 정기 여객 노선을 주 2회 취항했던 것. 우리 항공역사를 바꿔놓을 만한 쾌거였다. 짧은 미니스커트 유니폼도 그래서 바꿨다. 태평양 횡단의 역사성을 진중하게 담기 위해 다소 진한 감색 유니폼(3기)으로 교체했던 것이다.

서울~LA 노선을 개설한 대한항공은 1973년 10월 서울~파리 노선(화물기)을 개척했다. 유럽의 하늘 길도 활짝 연 셈이다. 유럽시대의 개막은 대한항공에 자신감을 줬다고 한다. 진중한 느낌의 감색 유니폼을 보다 산뜻하고 화사한 것(4기 유니폼)으로 바꾼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승무원의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꼽히는 스카프가 사용된 것도 이때부터다.

미주에 이어 유럽 길까지 열자, 대한항공의 기세는 하늘도 무섭지 않았다. 1975년 3월 서울~파리 여객 노선(5기 유니폼)을 개설하는 등 본격적 글로벌 노선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978년 1월 이후엔 서울~바레인~제다, 서울~쿠웨이트 등 중동 노선을 개척하고 확장했다. 서울~뉴욕 여객 노선이 취항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야말로 발전기였던 것. 유니폼도 이런 성장 시기를 맞아 다소 혁신적인 물결무늬 블라우스형(7개 유니폼)으로 교체했다. 이는 ‘대한항공 유니폼의 획기적 변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대 대한항공은 적극적 신규노선 취항과 함께 미국 화물전용 터미널을 확보하는 등 세계화를 꾀했다.

서울~프랑크푸르트 화물노선(1980년) 개설을 시작으로 싱가포르(1982년), 쿠알라룸푸르(1984년) 노선이 열렸다. 이런 성과를 발판으로 LA공항(1981년)과 뉴욕 JFK공항(1983년)에 전용 화물터미널을 준공, 항공화물 세계 1위를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이 시기, 대한항공의 유니폼도 변화를 거듭했다.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대한항공 고유의 색(파란색·빨간색·흰색)이 들어간 유니폼이 탄생했다(8기 유니폼). 서울아시안게임(1986년)·서울올림픽(1988년) 등 초대형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가 펼쳐졌던 1980년대 후반엔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디자이너가 만든 유니폼을 입었다.

1990년대 들어 대한항공은 눈부신 발전기를 맞았다. 5대양 6대주 세계 전 대륙 취항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기내식 비빔밥 ‘머큐리’ 대상 수상 등 세계 주요 상을 휩쓸어, 세계 항공업계에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대한항공의 쾌속질주는 2005년까지 이어졌는데, 흥미롭게도 이때 유니폼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진한 감색의 재킷·스커트·조끼형 유니폼(10기)이 그것이다. 특히 빨강·감색·흰색의 대한항공 로고가 입혀진 커다란 리본 모양의 스카프는 대한항공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구형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 등 8대의 항공기로 출범한 대한항공은 현재 130대의 항공기를 운항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했다.

국내선 운항횟수는 1969년 주 49회에서 569회로, 국제선 여객은 주 6회에서 686회로 각각 11배, 114배 증가했다. 화물 수송량도 1969년 3000t에서 현재 166만t으로 556배 늘었다.

명품 항공사 도약 위해 14년 유니폼 교체

대한항공의 다음 목표는 ‘명품’ 항공사다. 조양호 회장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서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하길 원하는 최고 명품 항공사로 도약하자”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무려 14년간 사용했던 유니폼을 전격 교체(2005년 3월)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디자이너 지앙 프랑코 페레가 만든 이 유니폼(11기)은 동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특히 스카프·액세서리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덕분에 ‘명품’유니폼으로 불리고 있다. 대한항공은 최근 2019년까지 국제 항공 여객 부문 세계 10위권 진입, 화물 운송 부문 15년 연속 1위를 유지하기 위한 ‘2019 경영목표’를 발표하고, 힘찬 도약을 시작했다. 40년을 넘어 100년 항공사로 가는 징검다리 해인 2019년,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어떤 유니폼을 입고 있을까? 유니폼을 보면 대한항공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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