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폭발력’ 1997년 한보 사건 넘어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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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박연차 게이트’의 폭발력이 1997년 한보그룹 사건을 넘어설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보 사건과 박연차 게이트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의 로비도 여야를 넘나들며 대통령의 측근까지 연루된 대형 권력형 비리사건이었다.

97년 1월 한보철강이 부도 나자 검찰은 정 회장의 부실대출 로비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당시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구속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 정 회장에게서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을 포함해 신한국당 의원 2명, 전직 내무부 장관, 은행장이 줄줄이 구속됐다. 야당인 국민회의의 최고 실세 권노갑 의원도 국정감사 무마 청탁과 함께 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함께 구속됐다. 한보 사건을 계기로 그해 5월 당시 ‘소통령’으로 불렸던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다른 기업인들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끝에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됐다. 두 사건의 규모도 비슷하다. 박연차 회장은 홍콩 법인을 통해 600여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이를 로비자금으로 썼다. 정태수 회장도 당시 640억원대 현찰을 로비자금으로 빼돌렸었다. 1억~2억원 정도의 현금을 쌈짓돈처럼 건네는 ‘통큰’ 로비 스타일까지 닮았다. 그러나 집권 2년차의 검찰이 벌이고 있는 박연차 게이트의 정치적 파장이 앞으로 한보 사건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박연차 회장 수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로 시작돼 대검 중수부에 바통이 이어져 의도된 사정작업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는 때문이다. 반면 한보 사건은 집권 말기 한보그룹의 갑작스러운 부도로 시작됐고, 검찰의 1차 수사결과 발표 이후 야당의 ‘몸통론’에 떠밀려 중간에 중수부장이 교체되는 우여곡절 끝에 끌려간 수사였다.

또 당시엔 홍인길·권노갑 등 여야의 원로 정치인그룹이 주로 타격을 입은 반면 이번 사건은 원로그룹뿐 아니라 민주당의 이광재 의원, 한나라당 박진 의원 등 차세대 정치인들까지 수사망에 포함된 게 차이점이다. 정 회장은 당시 재계서열 14위의 전국적 인물이었고 박연차 회장은 부산·경남(PK)에 기반한 기업인인 것도 다르다. 수사 시작부터 대통령의 후원자로 불리던 박연차 회장을 겨냥한 데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착역이 될 것이란 관측도 많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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