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동차 산업 지원, 자구 노력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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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노후 차량을 새 차로 바꾸면 자동차 개별소비세와 등록·취득세를 각각 70% 깎아주기로 했다. 차종에 따라 감면 액수가 다르지만 개별 소비세 150만원과 취득·등록세 100만원을 합쳐 최대 250만원의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노후 차량 교체에 따른 환경개선 효과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번 세제지원은 누가 봐도 자동차 업계에 대한 지원책이다. 세금을 깎아주면 일단 소비자가 혜택을 보지만 그만큼 신차 구입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국내 자동차 업계의 내수판매 부진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세제지원책을 내놓으면서 ‘자동차 업계의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마련’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노사관계의 개선이 없으면 세제지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노사관계 선진화란 단순히 파업하지 않는 차원이 아니다. 생산라인의 전환이나 신차종 생산 방식 등 경영적 의사결정을 노조와 협의하도록 해놓은 기존의 노사협약을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노사관계 선진화는 언제까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여전히 불분명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세금을 동원하는 세제지원의 조건이라면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정부는 이번 세제지원뿐 아니라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추가 지원책도 강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노후 차량 교체에 대한 직접보조금 지급과 1조원 규모의 자동차 부품소재 펀드 조성, 자동차 할부 캐피털회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그린카 개발자금 융자 등이 그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각국이 자국의 핵심 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을 감안해 우리도 국내 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가 지원한다고 우리나라도 자동차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우선 국내 자동차 산업은 쌍용차를 제외하고는 미국의 빅3나 유럽의 자동차 회사만큼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의 원화가치 약세에 힘입어 해외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아직은 정부가 나설 만큼 급박한 상황에 몰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굳이 지원의 명분을 들자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자동차 산업의 직간접 고용효과와 연관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 나빠지기 전에 대비한다는 정도다. 그렇다면 세제지원 같은 일괄지원책이 아니라 상황별·단계별로 지원 방식을 달리하고 엄격한 지원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동차 업계에 대한 지원의 전제조건은 업계의 자구 노력이어야 한다. 노사관계의 선진화 같은 애매한 조건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만큼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이 정말 어렵다면 인력을 줄이든지 임금을 줄이는 자체 노력을 먼저 해보고 나서 정부에 손을 벌리는 것이 순서다. 그간의 불합리한 노사관행을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경영부진의 고통을 분담하라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노사가 지금 누리는 혜택을 그대로 누리면서 국민 세금으로 불황을 넘기겠다는 것은 형평에도 어긋난다. 자동차 업계만 사정이 어려운 것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