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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환관과 궁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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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과 궁녀
박영규 지음, 김영사, 1만4900원

왕조시대의 유일한 ‘여성 공무원’인 궁녀와 달리 실제 궁궐 내 의녀(醫女)의 삶은 TV드라마 ‘대장금’이미지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결혼이 허용됐던 의녀라지만 그들은 결혼 전부터 비천한 계층이었다. 조선조 남성들의 시선도 음흉스럽기 짝이 없었다. “수작을 걸어 성공하면 한껏 즐길 수 있으며, 실패해도 뒤탈 없는 대상”(351쪽)이었다. 궁궐 내 간통 스캔들이 끊임없었던 것도 그 맥락이고, ‘조선왕조실록’에 의녀가 등장하면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이었다.

『조선의 왕실과 외척』의 저자로 역사대중화 작업에서 좋은 성과를 잇따라 내고 있는 박영규씨의 새 책 『환관과 궁녀』는 TV 사극의 감초 혹은 그림자 정도로 등장해 온 환관·궁녀의 삶과 기능에 대한 포괄적인 규명이다. 다분히 소재주의적 접근이라서 문제의식이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 평범해질 우려가 없지않겠지만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데뷔한 작가 겸 역사서 필자인 박씨가 밝힌 속내는 이렇다.

“이 글은 그 그림자들(환관과 궁녀)의 생성과 성장, 소멸에 관한 이야기다. 따라서 그 그림자들의 삶이 어떠했으며 그들과 제왕, 그들과 국가, 그들과 백성이 어떤 관계였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왕조시대의 내밀한 부분들을 이해함으로써 좀더 섬세한 역사적 시각을 형성하는데….”

앞에 의녀 이야기를 전했지만 전체적으로 서술이 평이한 이 책 1부에서는 환관의 명칭, 환관 부부와 자식, 환관을 만드는 과정, 한국과 중국 역사를 뒤흔든 환관들을 담았다. 2부에서는 궁녀의 명칭, 궁녀의 선발과 교육, 왕의 어머니가 된 궁녀들이 주축이 되며, 의녀 얘기는 맛보기다. 마침 TV사극 때문에 친근해진 저간의 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그동안 통사적인 왕조사를 써왔던 저자는 자료 수집과 고증을 바탕으로 ‘주변인’ 환관과 궁녀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입문서를 서술하는 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던 셈이다. 따라서 환관의 경우 중국 사료들을 두루 활용해 환관의 기원을 더듬고 있다. 이중 『사기』의 사마천도 꼼짝없이 당했던 궁형(宮刑), 즉 환관을 만드는 구체적인 거세의 노하우-어쩔 수 없이 꽤나 엽기적이다-도 눈길을 끈다.

중국의 경우 거세 기술자를 따로 양성했는데, 이들은 초창기 열명 중 아홉명이 사망해야 했던 무지막지한 절단식 시술과 달리 정교한 시술법을 개발했다. 아쉽게도 조선의 경우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거세 시술은 백정이 했을 것으로 저자는 추정한다. 이웃 중국의 경우 ‘환관의 나라’로 불렸지만, 조선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환관정치의 대명사로 불렸던 고려 의종시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조의 왕들이 환관을 대하는 스타일이다. 우선 세종. 깐깐한 성격의 그는 법대로 환관을 대했다. 측근정치의 달인 세조는 자신의 혁명에 도움을 준 환관만을 총애했다. 반면 성종과 명종은 신하들의 빈축을 샀다.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한 때문인지 환관에게 많이 기댔기 때문이다. 폭군 연산은 또 달랐다. 굽실거리는 환관만을 대접하는 스타일이었다. 조선조의 마지막 왕 순종은 멸조(滅朝)의 순간까지 충성을 다하는 환관을 예로 들며 신하들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책은 사진이 풍부한 게 장점이다. 조선의 마지막 상궁, 조선의 마지막 궁중 요리사, 환관의 족보, 궁녀들이 자위행위 에 사용한 남근목(男根木)-너무도 리얼하다- 등 60여장의 귀중한 사진과 도판을 실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앞의 의녀와 달리 궁녀들은 대체로 당당한 전문직으로 묘사된다. 왕이 사는 궁궐의 노동은 모두 궁녀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상상과 달리 궁녀는 매우 조직적으로 운영됐고, 맡은 바 임무도 분명했다. 저자의 말대로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을 착취당하고 성적으로 억압받는 존재로서의 궁녀가 아니다. 실제 궁녀라는 존재는 그보다 한층 조직적이고 영향력도 강했으며 역할도 다양했다. 조직화되고 계급화돼 그 고유의 역할과 영향력이 분명한 궁궐지키미였다는 뜻이다.” (225쪽)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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