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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돈 벌기, 글 쓰기보다 사는 게 더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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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씨(友)가 지난주 원주 토지문화관을 찾아 박경리씨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신씨에게 박경리선생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큰힘이 된다고 한다.

“풀 뽑는 일도, 잘 자란 걸 거둬들이는 일도 먹어줄 사람이 있으니 고마운 일이지요. 예전에는 먹을 것이 생겨도, 또 고추를 심어도 여기저기 나눠주느라 바빴는데 이제 여기 와 있는 작가들의 밥상에다 밭엣것들을 올려놓으니 뭐랄까 어미 새가 모이 물어다 먹이는 그런 기분이지.”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 문화관은 소설가 박경리(78) 선생이 직접 일구는 500여 평밭에 둘러싸여 있다. 이 밭에 뭐가 있는지는 없는 것을 찾는 게 더 빠르다. 감자는 알이 튼실해지는 중이고 옥수수대는 훌쩍 키가 컸으며 오이들은 받침대를 부지런히 올라타며 자라고 있었다. 어찌 보면 한 원로 작가가 소일하는 공간쯤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밭에서 키워낸 먹거리들은 창작실에서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는 후배 작가들의 밥상에 귀한 이름의 성찬(盛饌)으로 올려지고 있다. 이곳에선 병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고통이 잊혀질 만큼 구석구석에서 생명들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해 툭툭 터지고 있었다. 소설가 신경숙(41)씨가 생태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있는 박경리 선생을 만나러 토지 문화관을 찾은 날은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렸다.

신경숙:선생님, 농사 일이 많으시죠? 언제 저 넓은 밭에 저렇게 많은 작물을 다 가꾸셨어요?

박경리:늘그막에 복이죠. 저렇게 내 손을 타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풀 뽑는 일도, 잘 자란 걸 거둬들이는 일도 먹어줄 사람이 있으니 고마운 일이지요. 예전에는 먹을 것이 생겨도, 또 고추를 심어도 여기저기 나눠주느라 바빴는데 이제 여기 와 있는 작가들의 밥상에다 밭엣것들을 올려놓으니 뭐랄까 어미 새가 모이 물어다 먹이는 그런 기분이지.

신:유기농법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는 현실인데 직접 해보시니 어떠세요?

박:인력도 많이 들지만 퇴비를 사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들어요. 근데 5,6년 지나면 제법 자리를 잡게 되고, 8년쯤 되면 수확면에 있어서 농약 뿌리는 거를 능가해요. 땅이 해충에 대항할 힘이 생기고, 작물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거든. 근데 유기농을 시작하는데 뒷받침이 없으니 농민들이 엄두를 못내고 있는 거예요.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불쑥 불쑥 화가 치미는 건 우리의 가장 근본인 땅을 살리려는 정치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에요.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 그러니 자연히 농민들은 죄의식이 없어지고 수확하기 위해 농약을 쓰고 하는 일이 합리화돼버리지. 죽은 땅도 땅이지만 정신이 죽는 게 제일 마음 아프지.

박경리 선생은 엊그제 밭에서 오이 몇 개와 토마토를 땄다고 자랑을 했다. 지난 봄 돌나물로 물김치를 담근 얘기와 지난 겨울 담근 묵은 김치가 늦가을까지 먹을 만큼 있다는 이야기. 말만 들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살림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신경숙 작가는 건강을 여쭈었다.

박:이제 나이 먹었으니까 전체적으로 좋은 데가 없지. 한쪽 눈의 시력이 좋지 않아 균형을 못 잡으니까 자주 넘어져요. 눈 안쪽의 핏줄이 터져 가려서 그렇대요. 그래도 새로운 의술이 나와서 진행은 막는대요. 근데 나는 병원 가는 게 가장 싫어. 눈도 눈이지만 요즘은 단어를 자주 잊어버려요. 한참을 생각해야 돼. 현대문학에 장편 연재하던 것도 세 번하고 중단했잖아요. 건강이 회복돼도 다시 쓸 수는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느님 뜻에 맡기고 있어요.

신:이번에 나오는 새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박:지구, 우주라는 큰 테두리 속에서의 내 생각이라고나 할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지구인들이 생태를 위해 참여해야 할 일과 자세에 대한 글이에요. 그 동안 신문에 기고하거나 환경 문제에 대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이에요. 이 현실이 절망적인 건 다들 경제 문제만 급급해한다는 거예요. 파괴를 하면서도 자성을 가져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일텐데 경제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생태에 대해서는 무지해. 한쪽만 볼 게 아니라 전체를 봐야 근본이 보이는데 안타까워. 근본을 살려야 파괴된 것들도 살아나고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인데.

신:시민들은 이미 큰 문제로 의식하고 있는 부분이잖아요. 뭔가 중심을 잃고 있다는 상실감도 들고요.

박:발 밑에 불똥이 떨어진 거라. 그동안 돌보지 않은 문제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서 도시의 병(病)들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많이 먹으면 성인병에 걸리고 너무 적게 먹으면 생존의 문제가 걸리죠. 모든 생명은 아무리 미물이라도 스스로가 중심이어야 해요. 복판에 서야 돼. 먹는 것이든 무엇이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휘지 않으면서 정중앙에 서 있을 때 우리도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어요.

신:그런데 지금은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인 먹거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현실이죠.

박:‘만리장성의 나라’라는 연재를 통해 밝힌 적도 있지만 내가 벌써 십오년 전에 중국 다녀오면서 그때 기업가들, 재벌들한테 진작부터 유기농업에 투자하라고 했었어요. 인류가 아무리 발전을 해도, 아니 하면 할수록 먹을 것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 과학을 다 이루어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지 않아요. 생명이 생명 아닌 걸 먹을 수도 없고요. 생명이란 건 아무리 더럽고 볼품없는 거라 해도 돌고 환원하고 자리를 바꿔요. 가장 무서운 건 비생명이지. 그건 썩지도 죽지도 않아. 인간이 자연에 도전한다는 어쭙잖은 생각이 비생명들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결과가 어때요? 감히 어디다가 도전을 해요?
신:이제 우리가 자연의 보복을 받고 있는 거죠. 인간이 너무 이기적인 결과일까요?

박:그럼. 정치하는 사람은 표만 생각하고 있잖아요. 왜 국민들은 이렇게 우수한데 정치인들은 표만 생각해요? 표 생각만 하고 이것 저것 내세우면 결코 표 못 얻어요. 내가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젊은 사람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뭐라도 좀 하겠는데 시간이 없어요. 힘도 없고.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거 같아요. (박경리 선생은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전력투구할 수 없다는 점과 경제적 이유를 들며 자신이 출간해오던 환경·문학 계간지『숨소리』를 겨울호까지만 발행하겠다고 했다.)

비가 내리는 창 밖에서, 아까부터 계속 들려오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뭔지 물었다. 선생이 기르고 있는 거위 부부의 울음소리라고 했다. 선생이 창 밖을 향해 “오리야, 괜찮아”라고 한마디 하자 낯선 방문객을 향해 긴장을 늦추지 않던 거위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이내 조용해졌다.

신:이곳 토지문화관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굉장히 안온하다고 할까요. 얼마 전에 통영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통영 역시도 푸근하고 안온하고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거든요.

박:통영은 내가 가장 예민했던 시기를 살았던 곳 아니겠어요?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지. 근데 그 어머니의 자궁을 확대하고 확대해 보면 그게 지구가 되고 우주가 되는 거라. 이건 곧 지구가 우리의 자궁이란 말이에요. 근데 그렇게 자잘한 핏줄과 핏줄로 연결돼 있는데 균형을 무너뜨리면 어떻게 되겠어? 통영에서는 일제시대를 혹독하게 겪었기 때문에 생존의 문제가 절대적으로 다가왔던 시기였어요. 생명이 위기에 처할 때는 똑같은 자격이 주어져요.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거니까. 모든 생명이 서로 평등해야 우리가 살거든요. 난 그걸 그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면서 알게 된 거 같아요.

신:선생님께서는 다른 설명 필요 없이 사는 모습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돼 주고 계시는데 오늘을 사는 젊은 작가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박:세계인이 돼야지. 환경을 생각하잔 말만으로는 안 돼요. 잘 살려면 인류애 차원에서 사물을 봐야지요. 자꾸 분업화되는 세상이라 사람이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자꾸 좁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충돌합니다. 우린 맨날 경쟁을 해요. 경쟁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 협력하지 않으면 허물어져 내리는 생태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알면 좋겠어요. 땅이 식물을 조심스럽게 올려 보내듯이 갈고 닦고 축소하는 마음들을 가졌으면 해요.

토지문화관을 세우면서 박경리 선생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늪지대에 도랑을 치고 수로를 만들어 밭으로 일구는 일이었다. 우주로부터 선물받은 시간과 공간을 호흡하는 선생만의 방식이었다.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 죽은 것을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생명에 대한, 생명을 위한 선생만의 작은 의식이었던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헤어지면서 신경숙씨에게 글 쓰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직접 산에서 채취해 정성스레 말린 오가피를 건네주었다.

글·사진= 이병률 시인

*** 박경리는 …

소설가 박경리씨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진주여고를 졸업했고 56년 ‘현대문학’에 소설 ‘계산(計算)’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69년에 동학혁명 직후부터 해방까지의 근대사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장편소설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해 25년 만인 94년 탈고했다. 5부 16권으로 이뤄진 『토지』는 200자 원고지 26만장 분량이다. 99년 강원도 원주시 매봉산 자락에 토지문화관을 개관해 작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해 왔고, 2003년에는 환경·문예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해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 신경숙은 …

소설가 신경숙씨는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85년 ‘문예중앙’에 중편 ‘겨울 우화’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93년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 94년 장편 『깊은 슬픔』 등을 발표하며 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작가의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낮에는 공장 일을 하며 야간학교를 다녔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장편소설 『외딴방』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95년 현대문학상, 97년 동인문학상, 2001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0년 소설집 『딸기밭』, 지난해 소설집 『종소리』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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