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음부도사태 해법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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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해 기업 부도 어음 액수가 2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상 최고일 뿐만 아니라 역시 어음부도 고원 (高原)에 있었던 지난해의 갑절이다.

근래 우리나라 기업의 도산은 차입자금에 의한 기업 확장이 부닥치는 실패 모형의 전형이다.

그 책임은 무책임하게 자금을 대준 금융시스템과 사업 리스크에 대한 세밀한 계산 없이 돈을 꿔 사업을 확장한 기업, 양쪽이 똑같이 져야 한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기업 부도라는 초강력 경제 지진을 이 둘의 책임범위 안에 매둘 방도가 없다는 데에 있다.

기업 도산을 반영해 주가는 95년 이맘때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간에 신용이 철저히 실추하는 바람에 모든 상거래는 현금 없이는 성립하기 힘들게 됐다.

그래서 자금난은 가속되고 금리는 내려 올 줄 모른다.

현재 시설투자 성장이 정체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고금리는 고 (高) 투자비용 아닌 고 (高) 도산비용이라고 불러야 한다.

증시와 금융시스템의 치명적 약점이 모두 드러나면서 불은 원화 불안으로 확대됐다.

금융기관의 단기 해외부채 상환 압력에다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주식 매도대금 환전 (換錢) 수요가 가세해 달러 환율은 올해 약 13%가 올랐다.

정부는 보유 외환을 풀어 원 방어에 나서고 있으나 낭비로만 끝날 위험이 크다.

정부로서는 원 방어나 주가부양보다 기업 도산 또는 그 여파의 확산을 차단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다행히도 수출 신장.수입 감소.재고 축소.물가 안정 등 우리 경제의 거시적 건강조건은 호전되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시스템과 기업의 붕괴 진행이 경제의 기반 소프트웨어인 신용 네트워크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도산 퇴출은 막지 말아야 하지만 살아 남을 수 있는 기업마저 이웃 때문에 넘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방화벽 (防火壁) 역할을 할 수 있는 퇴출기업 처리기금 (基金) 을 속히 조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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