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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줄서는 일본 포장마차촌…피로쌓인 회사원 '쉼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그때 한 사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왔다.

우리 곁에서 술잔을 받아 놓고 연탄불에 손을 쬐고 있던 사내였는데…' (김승옥의 '서울, 1964년 서울' 중에서) 30여년이 흐른 지금, 밤새워 서울 거리를 헤맨들, 혼자 털럭털럭 찾아가 술 한잔 받아놓고 옆사람에게 불쑥 말을 던지는 풍경을 찾을 수 있을까. 차라리 바다를 훌쩍 건너가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일본엔 아직 이같은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야타이 (屋台) 라 불리는 일본 포장마차의 주고객층은 하루의 피로를 고스란히 싸들고 오는 회사원들이다.

이중엔 여자도 많다.

혼자 와서 조촐한 음식과 술을 시켜놓고 주인과, 낯선 사람과 세상얘기를 나누다 떠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단골집을 즐겨 찾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한국에서 어학강사로 일하는 고미네 리나 (小峰理奈.여) 는 "야타이 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어느새 풀리곤 했다" 며 "한국과 달리 주인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라는 점에서 대화가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고 얘기한다.

일본 포장마차의 위상은 우리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규슈 (九州) 최대도시 후쿠오카 (福岡) 의 번화가 덴진 (天神)에서 최고의 명물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야타이무라 (屋台村.포장마차촌) 다.

신흥 환락가 나카스 (中洲) 등의 유흥업소들이 호객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을 시간에도 야타이무라엔 각국의 관광객들이 빈자리 나기를 기다리며 줄을 선다.

도쿄 (東京).나고야 (名古屋).센다이 (仙臺) 등 전국 각지에서 포장마차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고 성업중이며 와세다 (早稻田) 대학등 학원가 역시 야타이의 주무대다.

야타이라 해서 음식값이 특별히 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협회에서 보건증등을 발급해 위생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고 주인 역시 깔끔한 조리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다.

분위기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닭똥집' 과 '꼼장어' 가 대표선수라면 일본은 단연 '오뎅' 과 '라면' 이다.

하지만 몇년전부터 전문화.다양화.세계화 바람이 불고 있다.

초밥.튀김.어묵.마늘구이등 전문요리 포장마차가 늘고 있고 프랑스요리 전문점, 한국식 불고기 야타이도 눈에 띈다.

이동식 야타이도 빼놓을 수 없다.

주로 라면을 파는 이 포장마차는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시장기를 유혹한다.

주인은 '자루메라' 라는 피리를 불며 다니는데,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자라라라 - ' 하는 음향이 마치 우리의 '메밀 - 묵, 찹쌀 - 떡' 소리처럼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야타이의 가장 큰 매력 - .초조함이 없다.

단속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주인은 없다.

트럭을 동원한 숨바꼭질도 없다.

'포장마차와의 전쟁' 을 선포하고 전경부대와 중장비를 동원하는 살벌한 풍경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단 협회의 허가증 없이 영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광상품으로의 양성화 정책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게 바로 옛 정취를 보존한 비결이자 경쟁력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국사람이 경영하는 닭발.불고기.막걸리 전문 야타이가 신주쿠 (新宿) 의 새로운 명물로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런 생각은 더 절실해진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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