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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불안 해소가 안정 지름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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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아그룹 처리방향이 가닥을 잡으면서 안정을 회복하는 듯하던 금융.외환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주가가 하루에 6% 넘게 폭락하는가 하면 환율이 급변동해 하루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이렇게 된 데에는 동남아 등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이 1차적인 이유이나 근본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된 것이 그 배경이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은 언제 대기업 부도가 재발할지 알 수 없고 부실채권을 우려한 금융기관의 여신태도 엄격화로 기업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또 동남아의 경제상황이 나빠지면 전체 수출이 부진해지고 이는 경기를 다시 하강 (下降) 국면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수출이 늘어나더라도 단가하락과 환차손 (換差損) 부담으로 이익은 없다고 지적한다.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투자가나 정책당국자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의견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이러한 부정적 견해만 귀에 들리고 긍정적인 요소는 간과되기 쉽다는 데 있다.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몇가지 다른 의견을 제시해 보자. 첫째, 향후 수출 전망이 과연 어둡기만한가.

동남아 경제가 부진하지만 유럽 경기가 상승세에 있고 동유럽.남미, 그리고 중국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일본 경제도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환율상승으로 우리 상품의 대외경쟁력도 강화됐다.

이렇게 볼 때 수출이 최근에 이어 내년에도 착실한 증가세를 유지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할이나 되기 때문에 수출이 증가하면 소비.투자 등 내수의 안정적인 확대와 국제수지 개선, 그리고 원활한 외환수급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환차손 증가와 단가하락이 기업수지를 압박하고 있으나 동시에 수지를 개선시킬 요소들도 많다.

올해들어 임금상승세가 둔화되면서 생산물 단위당 노동비용이 감소하고 있다.

재고증가율도 연초의 15% 정도에서 4%대로 낮아져 금융부담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환율상승으로 수출기업의 원화수입액도 크게 늘어났다.

따라서 외채부담이 큰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이제 수지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기업부도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새로운 기업의 창업이 활발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월중 부도기업수 (7대 도시 법인기업 기준 3천9백3개) 의 4배가 넘는 신설법인이 탄생 (1만6천2백22개) 했는데 이는 중소기업의 신진대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들도 인력조정.유휴자산 매각 등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넷째, 금융기관의 여신창구가 엄격해져 기업의 현금 흐름을 제약하고 투자를 어렵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여신심사 강화는 부실여신의 발생을 억제하고 자금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통화당국은 금융기관 여신이 위축돼 유망 흑자기업이 도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동성 관리에 탄력성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현재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새로운 성장의 동인 (動因) 도 착실히 축적되고 있다.

최근 우리 주가동향을 보면 옥석 (玉石) 의 구분 없이 거의 모든 주가가 한꺼번에 급등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가가 군중심리에 너무 좌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환율도 장기균형을 벗어나 있다는 느낌이다.

균형을 이탈한 가격변수는 조만간 제자리로 찾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상황이 불투명할수록 시장 참가자는 상황판단에 더욱 냉정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측면은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정책당국은 시장안정을 위한 단기대책도 강구해 나가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데 힘써야 한다.

국제기준에 맞는 기업회계제도 정착, 금융기관 부실채권의 조기정리, 기업퇴출제도의 개선, 그리고 정책결정의 투명성과 일관성 확보 등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상헌 <한국은행 조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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