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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부족 대한민국, 연 1276억t 강수량 30%도 못 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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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봄 가뭄 속에 세계 물의 날(3월 22일)을 맞았습니다. 봄비는 내리고 있지만 태백 등 강원 남부 지역과 경남·전남 도서 지역에서는 여전히 마실 물이 부족할 정도로 물 기근을 겪고 있습니다. 한 해 평균 1300㎜(세계 평균 880㎜)가 넘는 비가 쏟아지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제한급수에 들어간 지 3개월째. 태백시 황지동의 한 아파트 3층에 사는 고건석씨의 요즘 생활은 이래저래 팍팍합니다. 아침에 3시간만 반짝 물이 나와 빨래는 일주일에 두 번 몰아서 해야 합니다. 그나마 녹물이 나오기 일쑤입니다. 그냥 먹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휴일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 퇴근 후 저녁 시간엔 화장실도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는 태백시에 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그래도 우리 집은 애들이 다 커 외지로 나가 있어 다행”이라며 “기저귀도 못 뗀 아이라도 있는 집에는 물 고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고씨는 태백시의 상수도 담당 공무원입니다. 물 때문에 쏟아지는 시민들의 민원뿐 아니라 윗사람의 업무 지시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지난 13일과 19일 기다리던 비가 내렸지만 해갈은 언감생심입니다. 태백시 물 공급의 80%를 감당하는 광동댐의 수위가 15㎝ 상승했을 뿐입니다. 기상청에선 5월까지 더 이상 본격적인 비 소식은 없다고 합니다. 이틀의 비 소식에 엊그제부터 하루 3시간의 제한급수가 5시간으로 늘긴 했지만, 일주일 뒤엔 다시 3시간으로 줄어들 판입니다.

태백시의 고통은 우리나라 물 부족 현상과 물 관리 정책 부재가 어우러진 상징입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산 좋고 물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인구에 비해 이용 가능한 수자원은 적습니다. 연평균 강수량은 1300㎜(1973~2000년)로 세계 평균(880㎜)보다 많지만 인구가 많아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전 국토에 연간 내리는 비의 양은 1276억t에 이르지만 대부분 바다로 그냥 흘러가 버립니다. 실제로 이용하는 물은 전체의 26%인 331억t에 불과합니다.

계절과 지역별로 강우 차가 큰 '빗물의 양극화'도 약점입니다. 6~9월 홍수기에 연 강수량의 70%가 집중됩니다. 연 강수량 최고치(2003년 1792㎜)가 최저치(1939년 754㎜)의 두 배가 넘습니다. 그 차이는 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픽 참조>

물 수요는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계절별·지역별로 고르지 않게 쏟아지는 빗물을 잡아둘 수만 있다면 물 부족으로 생기는 고통을 줄일 수 있습니다. 태백의 연평균 강수량(2001~2008년)은 1401.4㎜로 같은 기간 전국 평균(1414.2㎜)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물이 부족한 것은 다른 곳보다 여름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는데 그것을 잡아 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그릇’을 키우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처럼 비가 한꺼번에 몰려 오는 곳에서는 빗물을 잘 저장한 뒤 가물 때 효율적으로 공급하자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세계 물의 날 기념식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식수원을 개발하고 중소 규모 댐과 저수지 등 물을 담아 둘 수 있는 물주머니를 크게 늘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물그릇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댐입니다. 하지만 댐 건설은 현지 주민의 피해, 환경·시민단체 반발 등으로 쉽지 않습니다. 물그릇에는 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도시의 건물과 거리에 빗물을 모으는 시설을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빗물 이용시설을 설치하는 소형 건축물(대지면적 2000㎡, 연면적 3000㎡ 미만) 주인에게 설치비의 90%(최고 10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중대형 건축물에 대해서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와 용적률 인센티브제를 적용해 빗물 이용시설의 설치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수원시는 우리나라 최초로 시 차원에서 빗물 이용 인프라를 구축하는 레인시티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도시 내에 건물마다 빗물을 모으는 시설을 갖출 수만 있다면 도시 안에 댐을 갖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오·폐수를 재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경기도 부천시의 ‘시민의 강’은 하수처리장에서 나온 물을 도심으로 흘려 보내는 인공 하천입니다. 새는 물그릇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는 태백시의 수돗물 누수율은 46%에 달합니다. 전국적으로 새는 수돗물만 잘 막아도 연간 5000억원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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