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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7> 적정 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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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을 아십니까. 편리하고 화려한 최신 기술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첨단 기술과 제품이 소비 욕구를 자극하지만 살 수도 없고 있어도 못 쓰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이들에겐 가격도 싸고 고치기도 쉬워야 합니다. 바로 적정 기술입니다. 첨단이란 기준에서 보면 느리고 구식이고 불편하지만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주기중·김종문 기자


① 플레이 펌프(play pump)

어린이 놀이기구와 수동식 펌프를 결합한 장치입니다. 쇠바퀴를 돌려 지하의 물을 끌어올린 뒤 물탱크에 저장하는 간단한 원리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착한 기술’로 인해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새로운 놀거리와 깨끗한 물을 얻었습니다. 주민들도 물을 찾아 먼 곳까지 위험하게 돌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최대 지하 100m에서 끌어올린 물은 78만L짜리 대형 탱크에 저장돼 언제나 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라운더아웃 아웃도어’사가 만든 것으로 물 부족으로 질병과 죽음 앞에 놓인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합니다. 물탱크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예방용 대형 포스터 등을 붙여 주민들을 교육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지역에 1000대가 설치돼 100만여 명이 혜택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펌프를 보급하는 미국의 민간 단체 ‘플레이 펌프 인터내셔널’에는 아프리카 곳곳에서 감사 편지가 쏟아집니다. 모잠비크 인타카의 한 초등학교에선 “우리 동네에 설치된 플레이 펌프를 통해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고 보내왔습니다. 성공 사례가 이어지면서 이를 지원하려는 각계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2006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인 로라 부시 여사는 대규모 정부-민간 기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플레이 펌프 인터내셔널에 1640만 달러(약 230억원)에 이르는 기금을 지원해 2010년까지 아프리카 전역에 4000대를 추가로 설치한다는 계획입니다.

② 머니 메이커

1991년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열악한 생활환경에 충격을 받은 미국인 엔지니어 마틴 피셔가 개발한 수동 펌프입니다. 전기나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발로 레버를 밟아서 작동합니다. 반경 200m 내에 강이나 연못·우물이 있으면 이 펌프를 이용해 쉽게 농업 용수를 끌어올 수 있습니다.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최대 높이도 14m에 이릅니다. 피셔는 펌프의 이름을 머니 메이커(money maker)라고 붙였습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부들이 편리하게 농사를 지어 빈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대당 가격이 10∼35달러로 지금까지 11만5000여 대가 판매됐습니다.

피셔는 2005년 킥스타트(kickstart) 재단을 세워 낙후 지역에 대한 기술 개발과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재단에 따르면 적정 기술로 인해 91년 이후 7만여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합니다. 피셔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빈곤 퇴치를 위한 전 세계 NGO네트워크인 원 월드 네트워크 (oneworld.net)의 ‘2008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③ 자전거 세탁기

자전거 차체와 드럼통을 결합한 세탁기입니다. 저개발 국가 여성이나 아이들이 빨래하는 데 들이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간 벽지 마을의 특성을 감안해 자전거를 동력원으로 썼습니다. 자전거는 비교적 부품을 구하기도 쉽고 수리하기도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전거에 달린 기어를 이용하면 변속이 가능해 세탁물의 양이 많더라도 힘을 덜 들이고 쉽게 빨래를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 세탁기는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 대학인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들의 작품입니다. 2005년 MIT 학생들이 개발한 이 세탁기는 같은 해 이 대학의 혁신 아이디어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스페인어로 자전거와 세탁기를 합성한 ‘바이슬아바도라’입니다.

④ 라이프라인

영국의 프리플레이(freeplay) 재단이 2002년 유엔개발계획(UNDP) 등과 함께 개발한 수동 충전 라디오입니다. 몸통에 붙은 손잡이를 돌려 내장된 배터리를 충전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1분 동안 빠르게 손잡이를 돌리면 1시간 동안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전기가 만들어집니다.

이 라디오는 많은 역할을 합니다. 학교 교육도 대신하고 질병 예방 안내도 합니다. 오지에 사는 사람은 라디오를 통해 세상 소식을 알게 되고, 일기 예보를 듣습니다. 프리플레이 재단은 이 라디오를 내전이 치열했던 아프리카 니제르에 먼저 보급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숨겨 놓았던 총을 들고 와 라디오로 바꿔 갈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⑤ 프리차지 웨자

발로 밟아 사용하는 수동 발전기입니다. 프리플레이 재단이 만든 제품으로 발광 다이오드(LED) 전구를 이용해 전기가 없는 오지의 밤을 밝힙니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4000여 명의 어린이가 등유 램프를 사용하다가 화상을 입는다고 합니다. 작은 발전기 하나가 세상을 밝히는 일 이상으로 큰일을 하고 있습니다.

⑥ 요요 발전기

어린이 장난감 요요를 닮았다고 해서 ‘요요 발전기’로 불리는 자가 발전기입니다. 정식 명칭은 ‘줄을 당기는 충전기’라는 의미로 PCG(pull cord generator)라고 합니다. 줄을 당기면 모터가 돌면서 전기를 생산합니다. 1분간 줄을 당기면 휴대전화는 20분, LED 전구는 30분 정도 쓸 전기가 만들어집니다.

MIT 출신의 브라이언 워쇼스키가 세운 미국의 벤처기업 포텐코의 제품으로 휴대용과 고정식 2종류가 있습니다. 휴대용은 무게가 453g에 불과해 한 손에 쏙 들어옵니다. 요요 발전기는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나눠주자는 ‘OLPC(one laptop per child)’ 운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⑦ 잠바로

디자인 웹진 ‘얀코 디자인’에서 발표한 잠바로(jaambaaro)는 페달을 이용해 달리는 2인승 자전거 구급차입니다. 운전석 옆에는 환자를 눕힐 수 있는 들것이 장착돼 있고 지붕에는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도록 태양광 패널이 덮여 있습니다. 디자이너인 베누아 앙지보는 “자동차가 없는 산골 마을에서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를 감안해 디자인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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