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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없는 성교육 토론으로 즐겁게 배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여자가 나가서 돈을 버는 경우도 많은데 남자가 부엌에 얼씬도 해서는 안된다는 말에는 반대합니다. " "남녀가 평등한데 꼭 남자가 결혼신청을 해야 한다는데는 동의할 수 없어요. " 24일 오후3시 서울 중동중학교 2학년3반 교실. 책상에는 딱딱한 수학책과 영어책 대신 청소년 성교육교재 '우리들의 멋진 사춘기' 가 펼쳐져 있다.

분단별로 질서정연했던 책상들도 9명씩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하기 좋도록 바뀌어 있다.

매주 금요일 마지막 수업은 청소년정신건강시간. 오늘의 주제는 '매력적인 남자가 되려면' 이다.

벌써 3학기째 계속되고 있어 토론자세도 제법 의젓하고 진지하다.

오늘 주로 도마에 오른 얘기는 남녀 성역할 차이에 관한 것.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는 속담이 등장하자 의견이 분분하다.

"여자는 말이 많아서 밖으로 나가면 안돼요. 가정의 기밀이 새고 그러잖아요. " 한 남학생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우 - ' 하고 쏟아지는 야유 소리. 뒤이어 "여자의 주장도 귀담아 들을게 많은데 그 속담은 잘못된 거 아닌가요" 하는 반론이 나오자 이번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사실 45분의 토론 시간은 너무 짧다.

지난 주 '성적충동이 생기면' 에 대해 얘기할 때도 그랬다.

'사랑.성 그리고 결혼' 을 토론할 다음주도 아마 그럴 것이다.

상기된 얼굴로 격론을 벌였던 신규섭 (13) 군은 "교과서에 안 나오는 것들을 배울 수 있어 좋아요. 지난 학기동안 학교폭력 및 약물에 관한 것에 대해 토론을 했는데 그 후론 정말 학교에서 싸우는 얘들이 거의 없어졌어요" 라고 들려준다.

이 토론의 정식명칭은 '청소년 정신건강 프로그램' .삼성생명 사회정신건강연구소와 중동중 인성교육연구위원회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지난해 9월 당시 1학년학생들을 대상으로 첫선을 보였다.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회정신건강연구소에서 파견된 연구원이 토론을 주도하고 중동중 교사들도 함께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2명의 교사가 한반의 토론을 이끄는 셈. "실시후 학교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는 교사들의 말마따나 실제 2학년 학생중에는 올해 무기.유기정학등의 징계를 받은 이는 한명도 없다.

"학생들의 정서를 높여 건강한 청소년 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하자는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서서히 달성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대화문화를 즐기게 된 것도 보람이구요. "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정현희박사의 자랑은 끝이 없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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