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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세계를 요리하라] 옆구리 터지면 실격 ! 홍콩서 김밥 말기 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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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제 김밥 만들기 경기를 시작합니다.”

사회자가 경기 시작을 알리자 6명의 홍콩 남성들이 일제히 프라이팬을 집어 들고 당근 채를 볶기 시작했다. 이어 준비된 김을 펴고 꼬들꼬들한 흰 밥을 조심스럽게 올려 놓은 참석자들의 얼굴엔 기쁨과 신기함, 그리고 긴장감이 교차했다. 연단 바로 아래에는 200여 홍콩인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응원하고 있었다. 22일 오후 4시 홍콩 주룽(九龍) 반도 동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항하우(坑口) 이스트 포인트 시티 실내 광장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한국관광공사 홍콩지사 주최로 20일 시작된 한국관광 음식축제 마지막 날 행사로 마련된 김밥 만들기 경연대회에 참석한 남성들은 모두 부근 홍콩 주민들이다. 1만2000여 홍콩 교민 중 항아우 부근에 사는 한국인은 수백 명에 불과하다. 홍콩인 주택가 한복판에 한국 음식이 도전장을 낸 것이다.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이날 하루에만 2000여 명, 사흘 동안 5000여 명(연인원)이 다녀갔다. 또 행사장 소유주인 홍콩 최대 부동산 업체 선홍카이 그룹은 행사를 모두 생중계했다. 자사가 소유한 홍콩 시내 7개 대형 쇼핑몰 고객들이 한식 문화를 간접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김밥 만들기 대회에서 우승한 윙찬(阿榮)은 “단순한 재료 배합이 아니라 당근의 주황과 달걀의 흰색과 노랑, 김의 검정, 시금치의 초록, 단무지의 노랑 등 색상의 배합이 마치 화가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고 맛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은근함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홍콩 최고 호텔 중 하나인 샹그릴라에서 경영관리를 담당하는 그는 “맛이 담백하고 은근한 데다 냄새도 없어 호텔에 김밥 코너를 내도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홍콩 항하우 지역에서 열린 한국관광음식축제에서 ‘김밥 만들기 경연’에 참가한 홍콩 남성들이 열심히 김밥을 말고 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이날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측이 마련한 한식 시식 행사장도 큰 인기를 끌었다. 아내와 아들 둘 등 가족이 함께 온 레이사이킴(李世見·전기공)은 “2005년 홍콩에서 방영된 대장금을 보고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져 찾아왔다. 5살과 7살 난 두 아들이 고소한 명태전 맛에 반해 세 번이나 줄을 서 먹었다”며 웃었다. 연구원 측이 마련한 명태전 1000여 개는 개장 4시간여 만에 모두 동이 났다. 김명주 연구원은 “홍콩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명태전에 약간의 단맛을 가미한 게 주효했다. 역시 한식 세계화는 현지인 입맛을 고려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시연장 바로 옆에는 연구원 측이 마련한 50여 한국 궁중과 반가음식 샘플이 전시돼 많은 홍콩인의 감탄을 자아냈다. ‘중의’라고 신분을 밝힌 필립 융(容順泉·75) 할아버지는 “약용으로만 생각해온 한국의 인삼이 음식 재료로 만들어지는지 처음 알았다. 홍콩에 이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있다면 부인과 매일 먹겠다”고 말했다. 한식의 차별화와 고급화·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음식연구원의 김용한 원장은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현지화·퓨전화·전통한식 등 세 가지 전략이 있다”며 “정부가 빨리 이 세 가지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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