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임기말 대통령이 할 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의 요즘 상황은 이런 식의 임기말을 보내다가는 선거고 뭐고 나라가 거덜날 것 같은 위기 속에 빠져 있다.

나라는 금융위기다, 주가폭락이다, 부도사태다 하며 들끓고 있는데 정부는 손 놓고 있고, 정치는 눈만 뜨면 싸움으로 소일이다.

정부나 국민 모두가 평상시와 같이 자신의 맡겨진 일에 충실하다가 선거를 치러 새 정부를 구성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언제나 실현할 수 있을지 우울하고 답답하다.

이런 성숙한 정권교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라의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중심의 핵심은 바로 대통령이며 단임제 (單任制) 하에서 대통령은 마음만 먹는다면 정파를 초월해 한 단계 위에서 나라를 안정시키면서 원만하게 다음 정부를 출발시킬 수 있다.

대통령이 권력경쟁에 초연해 임기동안 맡겨진 임무에만 충실하겠다는 각오만 있어도 사태가 이런 식으로까지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권력경쟁은 정당에 맡기고 대통령은 나라살림과 공정한 선거관리에만 충실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이 정국의 중심에 서서 갈등을 생성.증폭시킨다는 비판을 당내에서 받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신한국당의 내분도 일부의 주장대로 대통령의 모호한 개입에서 비롯됐다는 오해를 받을 만하게 됐다.

경선불복 사태 등이 발생했을 때 좀 더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수석비서관이 당내분에 개입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이 이런 오해와 무관치 않다.

또 후보들을 청와대로 불러 단독회담을 하는 것도 오해를 증폭시킬 소지가 있다.

공정선거관리가 목적이라면서 나오는 말들은 정계개편 소리 뿐이니 대통령이 선거정국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퇴임 대통령은 선거에서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발상으로 무리를 해 정국과 나라를 흔들어서는 안된다.

그런 일에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줘서도 안된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공정한 선거관리 외에는 정치로부터 초연해 나라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임기말을 보내고 새 정부를 맞을 수 있게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임기말 대통령의 책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