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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쌀은 ‘프랑켄슈타인 작물’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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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언젠가 카페에 들렀다가 버블티를 접하게 되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과일 스무디에 쫀득하게 씹히는 알갱이가 든 색다른 음료였다. 그 색다른 맛에 끌려 한동안 버블티를 자주 찾곤 했는데, 독특한 알갱이의 정체가 열대 지방에서 많이 재배되는 카사바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타피오카 전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카사바는 세계에서 여섯째로 많이 재배되는 작물로, 약 8억 명의 사람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 카사바의 영양 구성을 살펴보면 녹말은 풍부한 데 반해 비타민 A를 비롯한 몇몇 영양소의 함유량은 낮다. 그래서 최근에는 유전자 재조합으로 부족한 영양성분을 개선한 카사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얼핏 영양학적으로 개선된 카사바가 등장하면 기존의 것을 대신하여 빠르게 전파되리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못하기 마련이다.

사실 작물에 대한 영양학적 개선 시도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이미 금쌀(golden rice)이 개발된 바 있다. 이때의 금쌀이란 품질이 좋다는 뜻의 관용적인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황금색을 띠는 쌀이라는 뜻이다. 금쌀의 황금색은 유전공학적으로 첨가된 베타-카로틴 덕분이다. 체내에 유입되면 비타민 A로 전환되는 베타-카로틴은 육안으로 노란빛을 띠기 때문이다.

처음 금쌀이 개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는 매우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받았다.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원뿐 아니라 다양한 영양소를 음식을 통해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권장된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한 끼 식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는 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는 영양학적 고려가 없는 식사를 계속하는 경우 특정 영양소의 부족으로 인한 질환들이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비타민 A는 부족 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는데, 해마다 약 50만 명의 아이가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잃는다. 이는 비타민 A를 충분히 공급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일이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금쌀은 이런 아이들에게 훌륭한 음식이 될 수 있다. 단지 쌀을 먹는 것만으로 추가적인 비용이나 노력 없이도 비타민 A를 섭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금쌀의 개발이 백신에 버금가는 발견으로 칭송받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쌀이 개발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과학적 결과물의 출현과 이것의 사회적 적용은 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쌀 개발 당시 이미 사회적으로는 유전자변형(GM) 작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해 있었다.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유전자가 주입된 GM 작물을 공공연히 ‘프랑켄슈타인 작물’이라고 부르곤 했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금쌀은 경제적이고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다’고 주장해도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불신감은 금쌀의 효용 가치보다 위험성을 더 큰 것으로 파악했고, 결국 시장은 금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현재 같은 이유로 새로운 카사바 역시 실험실 속의 작물로 사라질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종류의 불신감은 한번 확산되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에 금쌀과 새로운 카사바는 당분간 시장에 진입하기 힘들 것이다.

금쌀과 카사바가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학적 결과물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긍정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과학의 사회적 적용에서 더 큰 걸림돌은 과학적 한계보다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과학과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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