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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정동영, 갈라지는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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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동영, 그가 돌아왔다. 2007년 대선과 지난해 총선 실패 이후 두 번째 유랑의 길에 올랐던 그다. 4·29 재·보선을 통해 두 번째 부활을 꿈꾼다. 하지만 야당 내에서도 그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경제 살리기론’과 ‘정권 심판론’이 맞서던 여야 대결 구도보다는 야권 내의 갈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수도권 한 곳, 영·호남 각각 두 곳 등 다섯 곳의 판세도 출렁이기 시작했다.

정동영 “오늘 제2 정치인생 출발 … 당을 돕기 위해 왔다”
당내 부평을 출마설 묻자
“그 문제 들어보지 못해
부평을 도울 생각은 있다”

전주 덕진 재선거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2일 오후 귀국했다. 정 전 장관이 인천공항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미국 체류 중 4·29 재·보선 전주 덕진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2일 귀국했다. 정 전 장관은 24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회동, 덕진 공천 여부를 놓고 담판할 전망이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오후 4시55분쯤 인천공항 A 입국장에 부인 민혜경씨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 50여 대를 타고 온 2000여 지지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정동영”을 연호했다. 측근인 최규식·박영선 의원과 이종걸 의원 등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일성부터 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다. “국민이 위태로워지고 남북관계가 후퇴하고 모든 상황이 거꾸로 가고 있다. 여러분에게 고통을 드린 데 대해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했다. 이어 “이에 맞서 힘쓰고 있는 민주세력의 집결처인 민주당을 돕기 위해 돌아왔다는 걸 알려드린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오늘을 제2 정치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고, 13년 전 정치를 시작한 초심으로 재출발하겠다”며 덕진에 출마할 뜻을 재확인했다.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에 대해선 “당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선두다. (당이) 그걸 이해해주리라 본다”고 말했다. 공항을 나선 정 전 장관은 지난해 총선에 출마했던 서울 동작을 지구당을 방문한 뒤 고향 전주로 내려가 하룻밤을 묵었다. 동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정 전 장관은 정 대표에게 전화했다. 두 사람은 24일 저녁 만나기로 합의했다.

1996년 15대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정 전 장관의 정계 복귀는 두 번째다. 그는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자 독일로 떠났다가 두 달 만에 돌아왔었다. 당시 정 전 장관은 “갈등과 대결의 정치에 넌더리를 낸 국민들은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번엔 2007년 대선과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하고 그해 7월 미국으로 떠난 지 9개월 만의 복귀다. 다음은 일문일답.

-무소속 출마 가능성은.

“열린우리당 시절 가능성 없던 당을 1등으로 만들었고, 당을 구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이 대선 후보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당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선두에 있다고 자부하며 그걸 이해해주리라 본다. 정 대표는 나의 당 대표이기도 하다. 그와 내가 협력하면 당이 더욱 튼튼해질 수 있다고 본다.”

-부평을 출마를 권유받으면 응할 건가.

“그 문제는 들어보지 못했다. 대선 당시 어려움 속에서도 부평에서 30% 이상 지지를 얻은 만큼 제가 앞장서 돕는다면 부평을 선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 대표와의 갈등은.

“(귀국 전에) 오자마자 저녁식사 모시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정 대표 사정으로 (아직) 못 만났다.”

백일현 기자

정세균, 귀국날 보자는 정동영 측 요구에 “너무 빠르다”
내일 담판 회담 하기로

“귀국을 환영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귀국한 22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그의 입국에 앞서 환영인사를 남겼다.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 대표는 “환영한다”는 말을 두 차례나 반복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의 공천 여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정 대표는 오전 공공기관과 기업체 인턴을 경험한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와, 오후엔 지인 자녀의 결혼식 등 예정된 일정도 변경 없이 소화했다.

그동안 정 대표의 측근들은 “지도부가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전달했다”(강기정 비서실장)며 그의 입장을 대변해 왔지만 정 대표 본인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이날도 정 대표는 “당에 힘을 보태서 우리가 이 정권의 부족함을 채우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어떻게 당을 제대로 세워서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냐가 제1과제”라는 등 원론적 표현만 계속했다.

그러면서 당의 ‘통합’이 판단의 우선 기준임을 강조했다. 그는 “당의 모든 잠재적 지도자들, 즉 정동영 전 장관과 손학규 전 대표, 김근태 전 의장은 물론 잠시 당 밖에 있는 인재들까지 모두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선당후사(先黨後私)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통합’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정 대표가 ‘공천 불가’ 입장을 취해 정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내홍은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 전 장관과 가까운 한 재선 의원은 “대규모 당원 이탈, 지도부와 갈등관계 고착화는 막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공천할 경우 그동안 정세균 체제를 뒷받침해 온 수도권 재선그룹과 친노무현 그룹의 동요가 부담이다.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만약 정 전 장관을 공천해 수도권 재·보선 패배로 이어진다면 정 대표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절충안으로 거론되던 인천 부평을 출마에 대해선 이미 정 전 장관 측이 “단 1%의 가능성도 없다”(최규식 의원)고 일축한 상태다. 정 대표와 가까운 한 원외 인사는 “대선 패배의 장본인이 1년 만에 고향에 출마하는 건 도가 지나친 상황이지만, 공천을 안 주면 정 대표가 너무 야박하다는 평가를 받기 쉬운 여건이어서 답을 내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일과 21일에도 의견 수렴에 분주했다. 20일엔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만나 의견을 구한 데 이어, 21일엔 ‘공천 불가피’ 입장이 다수인 전북 지역구 의원들과 만났다. 애초 귀국 직후 회동을 청했던 정 전 장관 측의 제안에 대해선 “욕속부달(欲速不達, 일을 빨리 하려고 서두르면 오히려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며 “내일이라도 만나면 좋지 않겠느냐. 그 정도면 빠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느긋한 한나라 “우린 경제 후보로 민심 파고들 것”
“정동영 출마 부끄러운 일”

안경률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22일 4·29 재·보궐 선거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은 ‘경제 후보’를 내세워 정권심판론을 비켜가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인천 부평을과 울산 북구에 이 전략을 집중하고 있다. 당초 한나라당은 야당이 강한 후보를 내거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앞세울 경우 이 두 지역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전주 덕진 출마를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민주당 내분이 한나라당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안경률 한나라당 사무총장(당 공천심사위원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두 지역에) 현재 신청한 후보만 해도 우리가 이긴다”면서도 “경제 문제에 정통한 후보가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지역 모두 자동차 산업과 연계된 지역이고, 지역경제가 엄청나게 어렵기 때문에 큰 사람들이 좀 나와서 하면 좋지 않겠나 해서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전략 공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에 따라 부평을 지역은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전략 공천 가능성이 힘을 얻고 있다. 울산 북구도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인 박대동 예금보험공사 사장과 현대자동차의 임원급 인사의 이름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안 총장은 “새로운 후보군을 포함시켜 한두 차례 시뮬레이션을 해 본 뒤 주말께나, 늦어도 3월 말까지 공천자를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경주의 경우 정종복 전 의원이 황수관 전 연세대 교수를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 공천이 유력한 상태다.

한나라당은 이날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해 공세를 폈다. 윤상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자숙하고 반성해야 국민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라며 “정 전 장관의 행보는 지역주의를 꿈꾸는 교언무실(巧言無實·교묘하게 꾸며대지만 내실이 없다는 의미)의 전형으로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안 총장도 “나오지 말아야 할 분이 자꾸 나와서 정치를 어지럽힌다”며 “정 전 장관이 출마하면 (민주당의) 현재 지지도도 더 까먹지 않겠냐”며 비판했다.

정효식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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