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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언론보도 따라가기 바쁜 뒷북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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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탤런트 장자연(29)씨 자살 사건을 수사 중인 분당경찰서가 22일 장씨 소속사의 옛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이 사무실은 와인바는 물론, 샤워 시설이 딸린 침실까지 있는 것으로 확인돼 술접대·성상납이 원스톱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찰이 문제의 사무실을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것은 전날 한 스포츠 신문이 의혹을 제기한 다음이었다. 분당경찰서 오지용 형사과장은 “소속사 전 대표 김모(40)씨의 집은 16일 압수수색했으나 이전 사무실에 대해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이다. 장씨가 작성했다는 문건엔 술접대·성상납 시점이 지난해 8~9월쯤으로 나와 있다. 소속사 사무실이 삼성동에서 청담동으로 옮겨간 것이 지난해 11월이란 점에서 당연히 삼성동 사무실을 주목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사무실 이웃 주민들은 “장씨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물건을 챙겨갔다”고 말했다. 경찰이 한발 늦은 사이 증거가 인멸됐을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경찰은 입수 문건에 관해서도 말을 바꿔왔다. 언론에 문건이 공개되자 경찰은 ‘유력인사 실명이 있다’(15일)→‘이름이 지워진 채 받았다’(17일)→‘실명 파악이 가능한 표현이 등장하나 리스트는 아니다‘(19일)는 식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경찰은 문건에 거론된 ‘실명’과 성상납 의혹 인사들의 명단과 소속 회사·직함 등이 나열된 이른바 ‘리스트’는 별개의 문건이란 논리를 폈다.

경찰은 인사들의 명단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문건도 확보하지 못한 채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이를 뒤늦게 확인하는 데 그치고 있다. 문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선 전 매니저 유장호(29)씨에 대한 소환 조사가 급하지만 ‘당사자가 출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늦춰지고 있다. 또 경찰은 일본에 체류 중인 소속사 전 대표 김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김씨는 연예담당 기자 등과의 전화 통화에서 “억울하다. 조만간 입국해 조사받겠다”는 말로 경찰을 우롱하고 있다. 김씨와 유씨의 갈등 과정이 장씨의 자살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두 사람에 대한 조사조차 벌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20일 분당경찰서를 방문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임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경찰 수사를 보면 핵심을 파고 들지 못하고, 계속 사건의 주변부만 맴도는 모양새다.

장주영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