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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유럽지부, 바스크족 자긍심 높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지난 18일 이베리아반도 북부의 항구도시 빌바오 주민들은 온종일 들뜬 분위기였다.

'구겐하임 빌바오' 의 준공식에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부부가 참석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구겐하임 현대미술관 유럽지부의 서쪽 끝이 될 빌바오미술관은 11월 베를린에 이어 점차 아시아까지 확산될 구겐하임 '동진정책' 의 출발점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있다.

스페인의 소수민족인 바스크족들이 모여 사는 비스카야주의 주도인 빌바오는 아더왕의 전설적 보검 '빌보스 검' 의 본산이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강철 산지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랜 언어인 바스크어를 사용하고 왕성한 독립운동으로 지난 77년 자치권을 획득할만큼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바스크족들은 그동안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변변한 문화시설 하나 갖추지 못한채 스페인의 고립된 '외딴섬' 으로 존재해왔다.

따라서 세계적 수준의 구겐하임미술관의 개관은 이들에게는 바스크 독립성의 상징이자 국제적 문화도시로 발돋움한다는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빌바오 중심을 가로 지르는 네르비온강을 따라 약7천4백평 부지에 세워진 3층 건물은 은빛 티타니움을 외부 소재로 사용, 바다에서 돌출하는 흰고래를 연상시킨다.

설계는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미술관으로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샌프란시스코출신의 프랭크 게리가 맡았다.

알루미늄 은박지를 원통과 상자로 이리저리 접어붙인듯한 이 건물은 전통건축의 균형감각을 무자비하리만치 파괴하고 실내는 빛들이 부딛치며 내는 난반사효과를 최대한 활용한 특수조명으로 포스트모던 건축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모두 크기가 같은 19개의 전시실은 필요에 따라 천정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총2백50점에 달하는 전시작 중에는 칸딘스키.마티스.피카소등 대가외에 잭슨 폴록.앤디 워홀.윌렘 드 쿠닝등 현대 미국화가들의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일색이란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는게 관람자들의 평. '구겐하임 빌바오' 측이 가장 주력하는 문제는 마드리드의 국립소피아왕비미술관에 소장된 피카소의 '게로니카' 를 가져오는 것. 37년 4월 26일 바스크족의 도시 게로니카가 나치군에 무차별 폭격당하자 피카소는 가로 7m50㎝.세로 3m50㎝의 대형화폭 '게로니카' 를 한달만에 완성시켜 나치의 폭력에 대해 항변하는 일화를 남겼다.

구겐하임미술관의 개관으로 늘어날 관광객을 예상, 빌바오시는 도시를 재단장하는 등 경제활성화의 부푼 꿈에 젖어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앞으로 세력권이 계속 확대될 구겐하임 왕국의 한 위성도시로 전락할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성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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