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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사자·타조 살리려 전쟁터에 뛰어든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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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로렌스 앤서니 지음,
고상숙 옮김,
뜨인돌, 352쪽, 1만3000원

“정말 바그다드로 들어가려는 게 맞습니까. 혹시, 지금 거긴 전쟁중이란 걸 모르는 건 아니죠?”(이라크 국경선에서 미군)

“거기 있는 동물을 구하러 가는 길입니다.” (저자)

“제정신입니까. 인간끼리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동물타령이라니요. 진짜 전쟁 중이란 말입니다. 내 목 하나 챙기기도 바쁜 판국이라고요.”(미군)

이 남자, 미쳤거나 무모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환경보호운동가 로렌스 앤서니는 2003년 봄 ‘라이언 일병’도 아닌 동물원을 구하려고, 이라크에 들어간 최초의 민간인이 된다. (기자는 민간인에서 제외된단다.)

폭격과 약탈로 초토화된 동물원에 남은 동물은 30여 마리뿐. 전쟁은 진행형이고 동물원에는 직원도 없고 도시는 고립됐다. 비참한 현실에 좌절도 잠시, 그의 등장으로 동물원은 ‘바그다드 판 노아의 방주’가 된다. 그는 자신의 위성 전화기를 이용한 물물교환으로 동물원에 필요한 물건을 얻어 오는 수완까지 발휘하면서 ‘마법사’로 통한다. 이 마법은 동물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덕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예측 불허의 사건도 잇따라 책을 읽는 내내 킥킥대게 된다. 자살특공대로 오인돼 사살될 뻔한 타조들의 질주와 알코올중독 성향이 다분해 수면제를 몇 번이나 맞고도 정신을 잃지 않은 곰과의 밀고 당기기는 흥미진진하다. 동물원 약탈에 나선 사람을 잡아 우리 청소를 시키는 장면은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가 새끼 사자와 개의 눈물 겨운 상봉 장면에서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감나고 매끄러운 번역까지 더해져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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