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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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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 ‘물랑루즈’는 격동의 시대인 19세기 말 파리의 쇼 비즈니스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최고의 흥행사 지들러는 종전에 없었던 규모의 새로운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 투자자를 물색하고, 권력자인 공작은 투자 대가로 물랑루즈 최고의 미녀 사틴과의 하룻밤을 요구한다.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도입부는 사당패가 판을 벌인 대가로 그 고을 수령에게 하룻밤 노리개로 바쳐진 공길(이준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공길은 남색의 희생물이었지만 1927년 출간된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나오는 ‘여사당 자탄가’를 보면 비슷한 일은 주로 여사당에게 일어났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랜 옛날부터 예인의 세계엔 세인의 관심을 모을 만한 매력적인 남녀가 모여들었고, 그런 만큼 항상 그 주변에는 권력과 돈을 이용한 유혹이 존재해 왔다. 특히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그 결탁은 때로 공공연히 꽃을 피웠다.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는 여배우와 창부의 구별이 쉽지 않을 지경이었던 시대의 타락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은밀한 거래의 역사가 워낙 장구하다 보니 그 고리를 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발적인 거래와 강요된 거래의 구분 역시 물 위에 그은 금처럼 불분명하다. 한 젊은 여배우의 죽음으로 드러난 일단의 사실들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연예계에선 이미 똑 부러진 활동 없이도 CF를 독식하고 있는 일부 스타에 대해 광고주와의 은밀한 결탁을 수군대온 지 오래다. 하루아침에 떠오른 스타에게는 항상 ‘뭔가 있다’는 소문이 따라다니곤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누군가 여배우에게 성을 이용한 접대를 강제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고, 일부 관련자의 처벌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제2의 장자연’이 사라지게 할 방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투명한 계약관계나 공개 오디션의 확대, 영세 기획사의 수익구조 개선 등이 모두 해결된다 해도 어두운 거래를 원하는 사람은 쉽사리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과 돈이 갖고 있는 특혜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른바 특권층이 연예인에 대한 유혹의 손길을 멈추지 않는 한, 법이나 제도로 막을 수 없는 추악한 거래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자가 일찍이 말한 ‘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함이 없다(知足不辱 知止不殆)’는 유혹하는 쪽이나, 유혹에 끌리는 쪽이나 귀담아들어야 할 경구다.  

송원섭 JES 엔터테인먼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