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새 패러다임 모색 국제세미나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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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세기말에 도전받고 있는 근대 사회과학과 서양의 이성주의를 점검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자리가 있었다.

동국대 사회과학연구원 (원장 김진철) 이 지난 17일 동국대 90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 '현대 사회과학 패러다임의 제문제' 와 지난 17~19일 한국아메리카학회 (회장 엄정식)가 수안보에서 가진 '미국과 아시아 : 문화의 만남' 이라는 주제의 국제세미나가 그것. 작지만 의미있는 세미나였다.

근대 이후 사회과학이 전면적으로 재고되는 상황에서 90년대 들어 21세기의 새로운 사회과학 페러다임이 모색되어왔다.

사회과학의 이념인 해방.이성.근대성.진보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서 촉발한 포스트모더니즘.네오프래그머티즘.페미니즘.생태주의등 세기말적 위기에 토대를 둔 이론들이 대표적. 동국대 세미나는 이같은 도전에 사회과학 내부에서 대응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황태연 (동국대.정치학) 이기홍 (강원대.사회학) 홍승기 (동국대.경제학) 정성진 (경상대.경제학) 함택영 (경남대.정치학) 김용학 (연세대.사회학) 홍기현 (서울대.경제학) 김대환 (인하대.경제학) 교수등 학계 중견 논객들이 참여해 분야별로 드러나고 있는 사회과학이념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응책을 모색했다.

이날의 기조는 해방과 계몽이라는 사회과학 이념이 여전히 유효한지, 유효하다면 이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인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황태연교수는 근대정치학의 기본개념을 중심으로 과학이념의 훼절과정을 검토했고 이기홍교수는 한국사회학 내부의 반성부재를 비판했으며 정성진교수는 오늘날 '이단적 경제학' 으로 간주되고 있는 정치경제학의 복원가능성을 모색했다.

대체로 사회과학이념이 아직 유효하다는데 무게를 둔 이날 세미나를 계기로 21세기 사회과학이념의 적실성 여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아메리카학회의 주제는 오늘날 서양의 이성중심 과학이 맞이하고 있는 위기를 동양적 사유로 보완.대체할 수 있는가와 맞물려있었다.

이 세미나에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데이비드 홀교수 (텍사스대.철학) 의 '새로운 유학과 새로운 실용주의 비교론' .그가 미국 학계에서 동서융합을 시도하는 대표적인 인물중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자연히 눈길은 유학과 실용주의의 비교에 쏠렸다.

홀교수는 유학의 도덕주의는 절대적인 자아나 진리를 거부하고 인간 사이의 문화적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고 이는 사물의 객관적 본질을 찾는 전통적 과학의 이념을 거부한 로티의 현대적 실용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용주의로 채색된 유학이 과연 유학의 실체에 어느 정도 다가가고 있는지는 앞으로의 논쟁거리로 남겼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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