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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11. 영원한 스승 조득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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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나의 영원한 스승 조득준 코치. LA올림픽 때 여자농구 감독으로 은메달을 획득한 조승연 WKBL 전무의 부친이다.

고려대에서 만난 조득준 코치는 내 농구 인생을 결정해준 정신적 지주다. 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믿어준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대성하고야 말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입학 직후 어느 화창한 봄날 실업팀 왕자 산업은행과의 연습경기가 있었다. 내가 레이업슛을 하기 위해 점프한 순간 산업은행 안영식 선수가 어깨로 내 다리를 밀었다. 나는 거꾸로 넘어지면서 오른팔이 부러졌다. 다분히 고의적인 파울이었다. 고통으로 울상이 된 나는 그에게 대들었다. 나의 거친 언행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때 조 코치가 나를 불렀다. "너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경기장에선 선.후배 간 예의가 있는 거야. 당장 가서 사과하고 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따랐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조 코치는 내 팔을 주물러 주며 주무와 함께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조 코치는 항상 팀훈련이 끝난 뒤 나를 따로 훈련시켰다. 하루는 비가 왔다. 훈련이 없을 줄 알고 그냥 집에 갔다. 다음날 조 코치가 "영기, 어제 안 나왔더군"하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죄송하다고 사과했더니 "괜찮다"며 물통에 물을 떠오라고 했다. 그리곤 공을 물에 적시더니 그 공으로 자유투 연습을 시켰다. 공은 무겁고 미끄러워 다루기 쉽지 않았다. 이어 물 먹은 공으로 러닝슛과 패스 연습을 반복했다. 그가 패스한 공을 받다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나중엔 손의 통증이 심해 손목으로 볼을 잡았다. 내가 비명을 지르면 그는 "고등학교 때 패스 연습을 안했군"하며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그날 다섯번째 물통을 비우고서야 훈련을 끝낸 그는 "이것은 어제 했어야 할 연습이었어"라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는 이 연습을 통해 공 핸들링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겨울 첫눈이 내렸다. 눈 때문에 훈련을 못할 것으로 짐작하고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어느 선수가 "선생님 혼자 운동장에서 눈을 쓸고 계신다"고 고함쳤다. 모두 달려나갔다. "눈도 오는데 오늘은 쉬는 게…." 주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들은 척도 않고 "연습을 시작해볼까? 우선 눈부터 쓸고"라며 빗자루를 구해오라고 지시했다. 이날 훈련은 결국 세시간 동안 눈과 씨름하는 것으로 끝났다. 선수들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선생님은 "기술을 익히기 전에 갖춰야 할 것이 농구를 하겠다는 의욕"이라며 태연했다.

그는 또 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림의 둘레가 자연스럽게 커 보인다며 그럴 때 슛을 쏘면 백발백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선.후배 간 위계질서를 강조했다. 그 무렵 농구공은 가죽 속에 튜브를 집어넣고 바람을 채운 다음 꼭지를 가죽끈 밑으로 밀어넣어야 했다. 늘 가죽에 기름칠을 해야 하고, 공이 터지면 꿰매야 하는 등 귀찮은 일이 많았다. 이런 일은 막내 몫이었다.

조 코치는 1958년 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직을 사양하고 대구에서 있은 대표팀 합숙훈련에도 합류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늦게 택시로 귀가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나는 대구에서 훈련 도중 그의 부고를 받고 한없이 흐느껴 울었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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