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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영희 칼럼

개성과 미사일 뒤에 있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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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빨치산 출신들의 모험주의 노선은 실패했다. 67년 빨치산 출신 민간인들인 갑산파를 숙청했던 김일성은 69년 대남 강경 노선 실패의 책임을 물어 만주파의 현역군인들까지 숙청했다. 국제정치의 급변이 김일성의 편이었다. 69년 출범한 닉슨 행정부는 핑퐁외교로 중국과의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72년에는 남북한 7·4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빨치산 1세대의 완전 숙청은 72년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데 걸림돌을 제거했다.

지금 김정일의 통치도 선군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군에는 경제보다 체제 안보가 우선이다.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가져야 한다. 개성 가는 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4월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버젓이 세상에 공포하는 북한의 도발 원인을 놓고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 라는 둥, 미국 오바마 정부에 북·미협상을 압박하기 위해서 라는 둥 제설이 분분하지만 턱없이 미흡한 설명들이다.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 교수는 최근 한반도평화연구원(원장 윤영관)의 한 포럼에서 북한 내부사정에 무게를 두는 견해를 밝혔다. 주목할 가치가 있는 의견이다.

김정일이 군에 의존하는 위기관리 체제를 어떻게 졸업하는가는 후계 구도와도 직결된다. 김정일이 그의 아버지같이 선군정치를 졸업한 뒤 아들 중의 하나에게 권력을 물려줄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다. 그러나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군은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 역시 트로이의 목마일지도 모를 외부의 지원을 대가로 핵·미사일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핵·미사일로 무장하는 것이 체제 유지에 훨씬 유리함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2006년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한 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행동의 폭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그래, 북한은 핵을 가졌다, 그러나 미국은 그걸 인정하지는 않겠다’로 슬그머니 후퇴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이 북핵 절대 불용 (不容)이라고 수백 번 말해도 설득력이 없다. 북한이 다음 달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 덩어리인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고 나면 북한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론은 완전히 현실감을 잃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강화한다 해도 실효는 의문이다. 한국의 미사일방어망(MD) 참여론이 고개를 들겠지만 한·중 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개성공단이라는 미시적인 문제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문제는 북한 문제 전체의 틀 안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책임론으로 허송할 시간은 더더욱 없다. 미국과 국제 사회가 인정하건 말건 북한이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되고,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된다면 남북관계의 구도가 완전히 바뀐다. 기다림의 전략은 시간 낭비다. 오바마 정부로서도 북한과 고위급 대화로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합의된 3단계 비핵화 프로세스만이라도 이행하도록 압력을 넣거나, 회유하는 길밖에는 마땅한 수가 없다.

미국 정부문서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표기했다가 한국이 항의하면 한발 물러선다. 그러면서 핵을 가진 북한이라는 기정사실은 굳어진다. 북한이 발사할 미사일에 대해서도 미국의 정보 당국은 슬그머니 인공위성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핵·미사일 개발이 북한을 고립시킨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지만 미국이 말없이 현실 인식으로 돌아서면 북한보다 한국이 먼저 궁지에 몰리고 미국과의 입장 차로 고민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사정을 고려한 종합적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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