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마음속의 문화유산]33.절집의 물고기 세마리-풍경·목어·목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은 차라리 애잔한 슬픔이다.

내게 있어서 하늘은 늘 그랬다.

금년 가을도 예외는 아니다.

며칠 전부터 어찌 그리도 하늘이 맑은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내 얼굴이 비치는 것만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망중한 (忙中閑) 으로 바쁜 일상 중에도 무료한 때가 있고, 한가한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이곳 보광사로 처음 올 때는 한가한 산중생활을 가져보려는 욕심을 가졌었다.

한데 그것 자체가 지나친 사치다.

여전히 이런저런 일들로 항상 바쁠 뿐이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벌써부터 산 정상에서 단풍이 들기 시작해 중턱까지 붉은 빛이 내려왔다.

그 고운 빛이 푸른 하늘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을 하루종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이 깊어가는 때 마음이 외로운 사람은 산사 (山寺) 를 찾아오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아주 한가하게 적막한 산사의 뜰을 거닐어 보라.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법당 처마 끝으로 하늘을 보라. 그러면 거기 한마리의 물고기가 눈이 부시도록 맑은 물위에 유영하고 있는 것을 볼 것이다.

땡그랑 땡그랑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언젠가 나는 가까운 도반 (道伴) 과 지리산 가을등반을 한 일이 있다.

반야봉 (般若峰)에서 노고단으로 붉게 물든 단풍길을 걸어서 화엄사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화엄사 요사체 마루끝에 앉아 땀을 닦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역시 하늘은 맑고 푸른데 거기에 물고기 한마리가 유유자적 놀고 있지 않는가.

바로 각황전 (覺皇殿) 높은 처마 위에 걸린 풍경 (風磬) 이었다.

늘상 보는 것이 풍경이다.

한데 그날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파란 하늘, 그 하늘 끝에까지 높이 솟은 각황전 처마, 그 처마 밑에 걸려있는 풍경, 그리고 그 풍경 끝에 달려 있는 물고기 한마리,가벼운 바람이 불자 그 물고기는 땡그랑 땡그랑 청아한 소리까지 내면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바다보다 더 푸르고 더 깊고 맑은 물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이라니. 나는 문득 왜?

저것이 저기 저렇게 걸려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필 왜 물고기가 처마 밑에 걸려 있는가.

저기에는 허공중이니까, 날아가는 새같은 것이라든지 아니면 나무를 타는 다람쥐같은 것이어도 될텐데 왜 하필이면 저기 저 처마 밑에다가 물고기를 매달아 놓았을까. 어찌 되었든 푸른 하늘은 물이 되고 거기에 물고기가 논다고 하는 것은 절묘한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그냥 단순히 저 절묘한 아름다움 하나 때문에 풍경끝에 물고기를 달아 놓은 것일까?

나는 그냥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역시 우리 조상들은 멋스럽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남겼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절에는 물고기를 형상화한 것이 많다.

우선 앞에서 말한 풍경끝에 달린 물고기도 그렇고, 법회의식을 행할 때라든지 조석으로 예불을 모실 때 사용하는 법구 (法具)가운데 목탁과 목어가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다.

목탁과 목어는 다 나무로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사용하는 악기 종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보면 풍경도 소리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절 집안에 세 마리 물고기는 모두 소리를 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다.

옛날 어느 스님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

갑자기 풍랑이 일어나면서 큰 물고기가 다가왔다.

그 물고기 등에는 나무 하나가 자라고 있었다.

배 가까이 다가온 물고기는 스님에게 울면서 말했다.

"나는 본래 스님의 제자 아무개입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잘 듣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잠만 잤습니다.

그러다가 일찍 죽어서 이렇게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자비심을 베푸셔서 제 등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제 형상을 만들어 사찰 안에 걸어 두어 소리가 나게 해 주십시오. 저와 같이 게으름을 피우고 잠만 자는 사람이 있으면 그 소리를 듣고 잠을 깨게 하고 경각심을 내도록 해주십시오. " 하고는 문득 죽었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그 물고기의 등에 자란 나무를 가져다가 물고기 형태의 악기를 만들어 잠만 자는 게으른 수행자들에게 경계심을 갖도록 했다.

그것이 목어이고 목탁이며, 풍경에 걸린 물고기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목어나 목탁 그리고 풍경 끝의 물고기는 절집의 상징물이 되었다.

목어는 어고 (魚鼓).어판 (魚板) 등으로도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석으로 예불 모실 때에 범종등 사물 (梵鐘.法鼓.雲版.木魚) 과 같이 사용된다.

오래된 절에는 반드시 목공들의 뛰어난 솜씨로 잘 만들어진 목어가 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보광사 목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를 가진 뛰어난 작품이다.

이러한 목어가 다시 스님들이 경을 독송할 때라든지 또는 법당에서 기도염불을 할 때 사용하기 편리하게 발달한 것이 목탁 (木鐸) 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등의 불교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불교 악기다.

어찌보면 방울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래서 목탁이란 나무방울이라는 뜻이다.

쇠로 만들면 금탁 (金鐸) 이 된다. 그러나 자세히 그 생김새를 살펴보면 역시 목탁도 물고기의 형상이 편이성과 예술성으로 변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은 목탁이란 말은 논어에도 나오는 말이다.

사회의 사표가 되고 귀감이 되는 이를 목탁이 되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는 것은 스스로 사회적인 사표가 되고 귀감이 되고자하는 뜻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하여튼 목탁이나 목어, 또는 풍경은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하기 위하여 소리를 내는 악기이며 법구이다.

옛날 백장 (白丈) 스님이 만든 수행승들의 법규 (白丈淸規)에도 보면 "물고기는 언제나 눈을 뜨고 깨어 있으므로 그 형체를 취하여 나무에 조각하고 두드림으로써 수행자의 잠을 쫓고 게으름과 혼미를 경책했다" 고 했다.

하지만 나는 우연한 기회에 풍경에 걸린 물고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지리산 천은사에서다.

하루는 점심공양이 끝나고 가까운 도반들과 저쪽 부엌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실로 우연히 내 눈이 가서 멈춘 곳이 부엌문 위쪽이었다.

맞배지붕이라 부엌 위는 비를 막기 위해 판자로 가려져 있었는데 그 판자 위에 물고기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보면 치졸하기까지 한 솜씨로 나무 조각을 한 것이다.

아니 왜 저것이 저기에 있지?

하고 의심을 하는 순간 아!

그렇구나 저기는 불을 때는 부엌이 아닌가.

그 위에 물고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바로 물이 있다는 상징이다.

그러니까, 불을 사용하는 부엌 위에 물고기를 만들어 놓음으로해서 화재를 예방한다는 상징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처마 끝에 물고기를 달아놓은 것도 같은 뜻과 멋이 깃들어 있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 옛날 전통건물은 모두가 목조로 되어 있다.

알다시피 목조는 화재에 약하다.

우리의 선조들은 화려한 목조건물을 만들어 놓고 늘 불을 걱정했다.

그래서 궁궐의 전각 (殿閣) 이나 사찰의 법당같은 중요하고 상징적인 건물에는 용을 조각해서 새겨놓았다.

한데 절집에서는 처마끝에 풍경을 달고 물고기를 달아 놓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법당은 바다 물속에 있다는 용궁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을 단풍 속에서 바라보는 사찰의 풍경이란 더욱 산호초 속의 용궁만 같다.

이것이 우리 문화의 귀중한 멋이다.

효림스님 <파주 보광사 주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