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이수종 도예전…농부의 심정으로 빚어낸 투박한 그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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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평상심 (平常心) 은 지키기가 어렵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얼하기에는 사람들에게 욕망이 너무 많아서이다.

그래서 불립문자 (不立文字) 를 얘기하고 직지인심 (直指人心) 을 말하는 종교에서는 이를 초발심 (初發心) 의 가장 우선되는 덕목으로 삼고 있다.

눌변의 도예가 이수종씨 (李秀鍾.49) 는 도자기 만드는 일을 농부가 들에 나가 '하늘을 보고 땅을 파는 일' 에 비유한다.

자연을 거스를래야 거스를 수 없는, 농부의 여름지이가 평상심을 갖지 않고서는 안되는 일이란 뜻이다.

도자기에 왜 평상심이 필요한가.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듯이 한국은 오래전부터 이름난 도자기 나라였다.

그만큼 전통도 깊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도자기를 평하면서 순박한 마음씨가 아무 거리낌없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평상심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뜻이다.

한국의 현대도예가는 이런 전통을 외면하기 어렵다.

아무리 현대적인 작업을 해도 거기에 도자기나라의 후손이라는 유전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李씨는 80년대 후반 들어서부터 아예 유전자찾기에 나섰다.

뿌리없이 서성이기보다 좀 늦더라도 근거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바뀌는 것에 조바심내지 않고 거기에 몸을 싣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작업도 작가의 개성을 강요하는 조형 (형태)에의 집착보다는 '내가 만들어 남이 사용하는' 그릇으로 바꿨다.

그후부터 거의 2년마다 한번씩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모든 것을 끝장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한해 농사를 지은 수확물을 내놓는 것처럼 그저 그렇게 작품을 내보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수종씨의 작품은 자극적이지 않다.

이번 분청사기의 귀얄 (큰붓) 과 철화 (鐵畵) 작업도 덤덤하고 조용하다.

백토물을 귀얄에 묻혀 척척 돌려가며 바르고는 그대로 구웠다.

또 철분이 주성분인 안료로, 마치 깜빡했던 것이 생각난 것처럼 휙 그어놓아 붓자국은 투박하기도 하다.

그릇의 형태도 분청의 풋풋함에 걸맞게 잔기교를 버리고 큼직하고 믿음직하게 했다.

이렇듯 이수종 그릇의 진짜 맛은 그릇 표면이나 형태에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거친데 있다.

그는 이를 위해 입자가 곱고 카오린 성분이 많은 산청토 (山淸土)에 일부러 거친 옹기흙을 섞어 만든 태토 (台土)가 사용한다.

조선시대 분청사기는 거친 태토를 감추기 위해 백토물로 분바르듯 치장한 것이다.

李씨는 그것을 뒤집어서 거친 것을 그대로 살리면서 치장 (粉) 과 대비시키고 있다.

그점이 그의 작업을 전통이 담긴 현대 분청작업으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18일까지 토아트스페이스. 02 - 511 - 3398.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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