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일 넘쳐도 다른 공장 라인엔 못 줘” 노·노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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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 3공장에 다니는 A씨(43)는 5일 2월분 급여로 310만여원을 받았다. 그러나 울산 2공장의 B씨(44)는 216만여원에 불과했다. 같은 17년 근속에 하는 일도 똑같지만 94만여원이나 차이가 났다. 3공장은 일감이 넘쳐 매일 2시간의 잔업에 주말 특근까지 하는 반면 2공장은 주문이 급감해 휴무·단축근무까지 하는 등 하루 8시간의 정상근무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이후 A씨는 매월 86만~147만여원의 시간외 수당을 받았지만 B씨는 석 달째 한 푼도 못 받고 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말부터 투싼·싼타페·베라크루즈 등 2공장 생산차종인 레저차는 수요가 떨어지고, 3공장에서 생산하는 아반떼와 i30 등 중소형 승용차는 공장을 풀가동해도 못 따라갈 정도로 주문이 넘친 결과다. B씨는 “봉급이 준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구조조정 불안”이라고 말했다. 회사도 올해 같은 불경기에 무려 9만 대의 매출 기회를 놓칠 것 같다며 발을 구르고 있다.


같은 회사에서 한쪽 공장에 일감이 넘치면 놀리는 옆 공장에서 생산하면 될 것 같지만 현대차엔 현재로선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단체협약상 노조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노조 집행부까지 나서서 “동료끼리 일감을 나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설득해도 3공장 사업부위원회(이하 3공장 노조)에서 버티고 있다.

현대차는 1월 11일 200억여원을 들여 2공장에 혼류생산시설(여러 차종을 함께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했다. 기존 레저 차량과 함께 3공장에서 소화해 내지 못하는 아반떼 주문량을 이곳으로 넘겨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회사는 2개월이 넘도록 시설을 놀리고 있다. 3공장 노조 대의원들이 “언제 시장이 변해 아반떼 수요가 줄어들지 모른다. 그때 가서 잔업·특근을 못해 임금이 깎이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2공장 노조원과의 일자리 나누기를 거부하고 있다.  

광운대 임영균(경영학부) 교수는 “현대차가 당장의 노조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무원칙하게 양보한 결과가 빚은 자업자득”이라며 “노조 역시 전체 노조원 차원에서 고용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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