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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따기]첫 '금관연구서'펴내는 김병모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경주에 수학여행을 간 어린 학생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신라 금관을 보고 선생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선생님 이 금관은 누가 썼을까요?" "아마 신라시대 어느 임금님이 쓰셨겠지. " "아아. 그러면 그 임금님은 굉장한 부자였겠네요. " "그럼 임금님인데, 부자였고 말고. " "그런데 선생님 이 금관에 삐죽삐죽하게 솟은 건 뭐죠?

나무 열매처럼 생긴 이 파란 돌멩이들은 왜 달려 있어요?" "글쎄, 옛날 임금님이 좋아하던 과일이 아닐까. "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선보일 김병모 교수 (한양대.고고학.사진) 의 '한국의 금관' 은 이렇게 시작된다.

학생의 질문에 당혹스러워하는 선생님. 그 선생님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금관을 보고 감탄은 하지만 그 모양과 상징성, 유래등에 대한 지식은 일천하기만 하다.

그것은 학계로도 이어진다.

금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많지 않다.

한국 금관의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연구는 미미한 편. 김교수의 이 가을은 그래서 뜻깊다.

그의 금관 연구가 일단 결산을 맞기 때문이다.

그동안 생각만 흩날릴 뿐 아무도 선뜻 엮어내지 못했던 귀중한 결실. 국내에서 처음인 우리 금관에 대한 연구 단행본이 곧 나온다 (푸른 역사刊) . 여름날 뜨거운 태양 아래 흘린 땀들은 그의 후기 (後記)에 잘 나타나 있다.

탈고를 위해 훔친 땀은 이번 여름만이 아니다.

50을 훌쩍 넘어 눈앞에 회갑을 기다리는 그의 나이처럼 되풀이됐던 모든 여름들의 발걸음들이 이 책의 구석구석에 묻어있다.

70년대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잇달아 발굴되면서 금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지만 그 독특한 디자인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명쾌하게 파헤쳐지지 못한 아쉬움이 그에게는 늘 남아있었다.

그점에서 그는 90년 여름 몽골학술조사를 '서광' 으로 표현하고 있다.

몽골속의 행보를 통해 몽골민속에서 한국의 솟대풍속이나 삼한 (三韓) 의 소도 (蘇塗) 문화와의 연계를 발견했던 것이다.

서봉총 금관의 새도 설명이 가능해졌다.

그는 이 책에서 금관과 새토템을 17개나 되는 예로 풀어내고 있다.

주몽과 새, 천마총의 새날개, 한국 솟대위의 새…. 그의 책은 금관세계로의 여행이다.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의 최초 금관발견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금동관.은관을 총망라하고 있다.

나무.곡옥 (曲玉).나뭇잎 등 금관의 형식과 장식들도 친절히 비교설명하고 있다.

국내 금관에 대한 면밀한 여행이 끝나면 금관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행이 이어진다.

알타이산맥 주변의 민족들은 자신들의 성산 (聖山) 을 금 (金.Altai) 산이라고 부른다.

여진족들은 나라를 세우고 금 (金) 이라고 했다.

우리는 성 (姓) 까지 김 (金) 씨로 정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일부에서는 격렬한 반론이 제기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논쟁을 거듭하면서 연구가 발전하고 우리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 아닙니까. " 그의 말 그대로다.

'한국의 금관' 은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할 테마의 한 장 (章)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금관으로 나타나는 북방의 알타이어족 문화와 고인돌로 나타나는 남방의 흑조문화가 이 땅에서 어떻게 명멸하고 계승됐는지 밝혀내는 것이 그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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