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금 공룡화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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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내년중 공공기금의 운용규모를 28% 가까이 늘리는 것은 예산을 절약해 5.8% 증가에 머무르게 하겠다는 긴축의지와는 상치되는 것이다. 내년중 공공기금의 순조성액이 1백조원을 돌파한다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커져 있는 공공부문의 경제비중을 축소해야 한다는 명분에도 어긋난다.

더 큰 문제는 늘어나는 공공기금의 조성기반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이라는 사실이다. 그러잖아도 정부가 너무 국민연금에서 자금을 가져다 쓰기 때문에 2020년대에 가면 연금수급연령을 상향조정하거나 수급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계속 정부가 국민연금에서 공공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우려되는 일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아무리 긴축예산을 편성했다 해도 넓은 의미에서 공공기금도 정부재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면 정부의 긴축정책은 물건너간 셈이다.

정부가 공공기금을 늘리는 의도는 명백하다. 일반예산은 우선 여러가지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편성되고, 특히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반면 공공기금은 일반예산과는 달리 각부처가 특정한 분야의 사업에 대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원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고 국회 심의도 받지 않는다.

정부가 할 일은 국회에 보고하는 것인데, 이 또한 형식에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부가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집행과정에서도 일반예산은 항목지출 변경이 감사원의 사후감사에서 문제가 되지만 공공기금을 사용할 경우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의 재가만 받으면 된다.

감사원은 지난해 정부의 각종 기금에 대한 운용실태 특감에서 기금규모가 방대해져 관리비용이 늘어나고 있고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으며 상당수 기금이 공공사업 지원보다 수익성을 앞세우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밖에도 공공기금의 운용을 놓고 금리입찰로 인한 금융시장의 교란이나 주식투자를 잘못해 투자손이 발생하는 등 각종 문제를 야기시켜 왔다.

정부는 행정편의주의에서 벗어나 가급적 공공기금을 일반예산으로 전환시켜 긴축의 본래 뜻을 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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