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Only Hope ② 정·재계 인사 … 연예인 … 연아를 귀찮게 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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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만 해도 김연아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스포츠에 관심있는 열성팬이라도 세계피겨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던 꿈나무 중 하나로 아는 정도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김연아는 대한민국 사람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스타가 됐다. 2007년 한 포털사이트가 실시한 설문에서 ‘한국인에게 희망을 주는 스타’로 뽑힌 것을 비롯해 무슨 기념일만 되면 실시하는 앙케이트 마다 ‘함께 있고 싶은 스타’ 1위로 뽑히곤 했다.빅뱅·소녀시대·원더걸스 등 연예인들과 함께 국민적 아이콘으로 성장한 것이다.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들 김연아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부탁 전화가 너무 많아서 매니지먼트사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온 국민의 아이콘 김연아

김연아의 몸이 열 개라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겠지만 개인훈련을 하고, 대회 준비를 해야하는 스포츠 스타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온리 호프’의 완벽한 연기를 위해서 구슬땀을 흘리는 한편 부상을 방지하는 일도 김연아의 몫이다.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시간도 아껴써야 한다. 공식 연습과 대회 출전만으로도 스케줄이 빡빡하지만 이것 외에도 반드시 해야될 일들이 줄을 잇는다.

그 일들 가운데 가장 필수적인 것은 미디어와의 인터뷰다. 그러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다 보니 일일이 응대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김연아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한 뒤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신신당부한 것도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가능하면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대회 때는 특히 인터뷰를 최소화해 달라. 특히 경기 직전 인터뷰는 안된다. 선수의 연기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서 코치가 이런 당부를 한 것은 경기를 하루 또는 이틀 앞두고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김연아 역시 “인터뷰가 너무 많아서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야 한다. 꼭 앵무새가 되는 것 같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김연아와 오서 코치의 요청에 따라 2007년 첫 대회인 컵오브차이나 그랑프리대회부터는 인터뷰 방식을 바꿨다. 공식연습 직후 10분 이내에 경기장에서 합동 인터뷰를 하고 좀더 심도있는 인터뷰는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로 미루면서 경기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너도 나도 “김연아 만나게 해달라”

그렇다고 김연아의 집중력을 흐트릴 수 있는 요소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낯선 손님’들의 방문이나 만나자는 요청은 대회 때마다 김연아를 지치게 한다. 모두들 김연아를 격려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었겠지만 처음 보는 얼굴들과 일일이 웃는 낯을 해야 하는 김연아의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애처로웠다. 오죽했으면 국제빙상연맹(ISU)의 한 홍보담당관이 “김연아를 보고 싶어하는 한국의 귀빈(VIP)들이 이렇게도 많으냐”고 했을까.

김연아를 만나겠다는 사람들은 정·재계 인사 뿐이 아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김연아를 보고 싶다며 러브콜을 해왔다. 특히 2월 중순 4대륙 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밴쿠버에서 돌아온 직후엔 연예인들의 만남 요청이 쇄도했다. 내 이름과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대뜸 전화를 걸어와서 “연예인 응원단을 구성할 계획이니 세계선수권대회 경기 직전에 김연아를 만나게 해줄 수 없느냐”고 했다. 김연아가 대회 때 연예인 응원단을 만날 이유가 없고, 더욱이 경기 직전에는 절대로 만날 수 없다고 했더니 이 연예인은 30초 아니 5초라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졸라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는 팬들도 많아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박수를 보내는 분들이 많다. 김연아가 외국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우승한 뒤 오랜만에 한국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막상 계산을 하려하자 식당 주인은 “어떤 분이 이미 계산을 하고 나갔다”며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모 대기업 현지법인장의 이름과 함께 깨알 같은 글씨가 씌여 있었다.

‘김연아 선수 오늘 연기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대회 입장권을 미리 구매해 170명의 현지법인 직원에게 돌리면서 김연아를 응원하도록 독려했다는 그 현지법인장에게 나는 한국에 돌아와 감사전화를 했다. 그러자 그 분은 “김연아 선수가 잘 먹었으면 됐다. 뭐 그 정도 일 가지고 국제전화까지 하느냐” 고 말해 나를 김동시켰다.

또다른 대기업 회장은 그랑프리 시리즈대회에서 VIP석을 마다하고 일반석에서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지켜본 뒤 곧바로 대회장을 떠났다. 여느 VIP였다면 당연히 김연아와 악수는 기본이고 기념촬영까지 하려고 했을텐데 말이다. 앞으로 김연아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김연아를 격려하고 싶다면 멀리서 박수를 쳐주는 게 진정 선수를 위하는 일이 아닐까.

<구동회 ib스포츠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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