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체험, 도시인의 삶] 서울 다산콜센터 상담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5일 오후 4시 서울 ‘다산콜센터’ 상담원 김혜연(32)씨의 컴퓨터 모니터에 ‘전화받기’ 글자가 떴다.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40대 주부 정미연(가명)씨의 전화였다. “과일가게의 운영이 어려워져 임대료와 집세가 넉달치나 밀려 있는데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한 지원금은 없느냐”는 문의였다. 또박또박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던 정씨는 “살 집이 없는 것보다 애들 교육비가 더 걱정”이라는 대목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산콜센터에는 서울 시민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전화가 하루 1만3000여 건씩 걸려온다. 김경진 기자(右)가 박형진 콜센터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상담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듣고 있던 김 상담원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고객님이나 저나 같은 서민 아닙니까. 그 마음 저도 압니다. 그래도 아이들 생각하고 힘내셔야지요. 도와드릴 방법이 있나 찾아보겠습니다.” 김 상담원은 보건복지가족부와 마포구 주민생활지원과에 알아본 뒤 복지부가 실시하는 ‘저소득 자영업자 대출’을 소개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시청 별관 12층 다산콜센터는 1000만 서울 시민의 삶과 애환이 투영되는 곳이다. 하루 평균 1만3000여 건의 전화가 걸려 온다. 다산콜센터를 찾는 시민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을까. 5~6일 이틀간 상담원과 함께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접해 봤다.

어려워진 경제를 반영하듯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화가 눈에 띄었다. “쌍둥이를 낳아 육아 휴직 중인데 남편이 얼마 전 노점상을 하다 폐업해 분유값이 없다”(30대 주부),“지게차를 운전하다 실직했는데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느냐”(50대 가장) 같은 문의들이다. 상담원들은 가족 관계, 재산을 물어본 뒤 서울시나 복지부 또는 구청 등 관계 기관에 문의해 지원 방법을 안내해 준다.

서울시에 따르면 실직 가정 등 경제위기 관련 상담건수는 2월 한 달 간 4928건. 지난해 같은 기간의 736건에 비해 여섯 배 이상 늘었다. 실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호소 2435건, 기초생활보호 관련 문의 2162건, 구직 238건 순이었다.

하소연할 곳이 없어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 5일 오후 10시 임현우(26) 상담원은 강수진(가명)씨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인과 2002년 국제결혼해 혼인신고를 마쳤으나 남편이 미국으로 가 버렸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임 상담원이 시청에서 제공하는 무료 법률상담 시간을 예약해 줬지만 강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 이야기 좀 들어 달라”며 전화를 끊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통화가 끝났다. 임 상담원은 “때로는 해결책을 찾기보다 그저 들어주는 게 고객에게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밤이 깊어지자 취객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6일 오전 1시에 전화를 건 한 시민은 “강남역에서 일산까지 가는 막차가 언제까지 있느냐”고 물었다. 김영미(37) 상담원은 “비가 오는 날 저녁이면 술 취한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6일 오후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 직접 전화를 받아 봤다. 교통 관련 문의(65%)가 많은 밤시간대(오후 7시~오전 8시)와 달리 상하수도(24%), 주택·건축·복지(12%)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퀵 서비스 기사인 김정태(38)씨는 “급히 건물 위치를 찾아야 할 때 120에 문의하면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황당한 질문도 있었다. “친구와 내기를 했다. 청계천이 시청 방향으로 흐르나, 청계 8가 방면으로 흐르나”라고 묻거나 “노래방인데 노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곡명을 알려 달라는 이도 있었다.

◆상담원 199명 교대 근무=다산콜센터는 서울시의 각종 민원 전화와 산하기관의 ARS 전화번호를 ‘120’번으로 통합해 2007년 9월 운영에 들어갔다. 160시간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전문 상담원(주간 130명, 야간 56명, 수화가능자 13명)이 2교대로 연중 무휴로 근무한다.

김경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