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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이집트 카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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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영국해군 소속 수병들이 200여년 전 이집트에서 전사한 선배들의 유해를 알렉산드리아 영국군 묘역에 안장하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이집트 북부 지중해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해변에서 약 1km 내륙에 위치한 알샤트비 공동묘지 내 영국군 묘역. 사막의 누런 모래바람과 해변의 빗방울이 뒤범벅돼 흩날리는 가운데 '205년 만의 장례식'이 열렸다.

1798~1801년 이집트를 장악하려는 영국군과 프랑스군 간에 벌어진 전투에서 사망한 영국인 30명의 영혼이 오랫동안 알렉산드리아 주변을 떠돌다 안식처에 묻힌 것이다. 30명의 유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서쪽으로 20여km 떨어진 아부키르 부근 섬에서 발견됐다. 그리스.로마시대 유적 발굴 작업을 벌이던 이탈리아 고고학자 파올로 갈로가 지난해 이들의 매장지를 처음 발견했다.

이를 전해들은 영국 해군사학자 닉 슬로프가 유해 발굴 작업 끝에 30명의 유해가 넬슨 제독의 휘하 장교와 수병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수개월 동안 넬슨 제독의 일지와 고문서들을 탐독해 한 명이 넬슨 함대의 부함장 제임스 러셀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나머지 유해의 신원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이날 30명의 유해가 담긴 관들은 이집트 해군 군악대와 영국군 수병 80여 명의 애도 속에 묘역에 안장됐다. 영국 해군 의장대는 세 발의 조포를 쏘아올렸다. 데렉 플럼블리 이집트 주재 영국대사는 "넬슨 제독 휘하 수병들의 유해가 쉴 곳에 안장돼 기쁘다"고 말했다. 올해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넬슨 제독의 200주기다.

장례식에는 신원이 확인된 제임스 러셀 부함장의 손자 고든 와츤(87)이 참석, 부인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와츤은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수없이 알렉산드리아에 왔었다"며 "집안의 영웅인 할아버지가 영국 해군의 예우를 받아 묻히게 돼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집트의 북서부 알라메인에서 독일군과 전투한 적이 있다"며 "이집트는 제2의 고향"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식장에서 만난 모든 이집트인들과 뜨거운 포옹을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1798년 8월 지중해와 이집트의 패권을 놓고 아부키르 만에서 치열한 해전을 벌였다. 영국의 넬슨 함대가 14척의 함대로 아부키르 만을 기습 공격해 나폴레옹 해군을 격파했다.

프랑스 해군은 먼저 이집트를 점령했지만 아부키르 해전을 계기로 영국에 밀렸다.

나폴레옹 군대는 1801년 나일강 전투에서 영국군에 항복했다. 3년에 걸친 해전과 육상전투에서 프랑스군 1500여 명과 영국군 200여 명이 전사했다.

이번에 이장된 수병 30명은 1800년 아부키르 인근 섬의 육상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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