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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1200km 종주 고통도 신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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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이라는 뿌리에 닿듯 산줄기를 더듬어 가면 이 땅 모든 산줄기의 근간이자 어버이가 되는 백두산에 이르게 된다.

백두산까지의 산은 물줄기에 의해 끊기지 않고 모두 능선으로 연결돼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 출발하더라도 제대로만 가면 물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가장 웅장하며 이 땅의 척추를 이루고 있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어내린 산줄기를 백두대간 (白頭大幹) 이라 부른다.

백두대간에서 가지쳐 나간 산줄기는 정맥 (正脈) 과 정간 (正幹) 이다.

정맥에서 다시 가지쳐 나간 산줄기는 지맥 (支脈) 이 된다.

백두대간은 1정간 12지맥으로 돼있다.

백두대간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자연스레 터득한 지리관의 총화이다.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가지쳐 나간 호남정맥을 경계로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뉜다.

또 백두대간을 경계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말씨가 다르다.

삼국시대에 백두대간은 국경이기도 했다.

이처럼 백두대간은 허공에 떠 있는 피상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활과 뗄 수 없는 친근한 삶터의 가르막 구실을 했다.

하지만 백두대간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는 광물수탈을 위해 1900년과 1902년 두차례에 걸쳐 지질조사를 했고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는 이를 토대로 족보도 없는 산맥 개념을 들고 나왔다.

대간과 정맥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대신 태백이니 노령이니 하는 산맥이 등장했다.

해방후에도 이 개념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1980년 겨울,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 (64) 씨는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조선조 영조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 (1712~1781) 이 쓴 '산경표' 라는 허름한 책을 발견했다.

대동여지도 복간을 준비하던 중 몇가지 의문에 고심했던 이씨에게 '산경표' 는 문제를 푸는 열쇠와도 같았다.

'산경표' 는 여암이 정리한 우리나라 산의 족보, 즉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에 속한 산들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었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한다" 는 백두대간의 거리개념은 여기서 나왔다.

백두대간 부활에 첫 시위를 당긴 이들은 산악인들이었다.

처음엔 대학생들을 중심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흔적조차 지워져 가시덩쿨로 뒤덮힌 길을 헤치며 온몸으로 금을 그어 나갔다.

더러는 독도 (讀圖)에 실패해 금에서 벗어나 종주를 중단하는 좌절도 겪었다.

더러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폭우속에서 지쳐 울기도 했고, 작열하는 땡볕 아래서 더위에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피땀과 열정을 바쳐 산을 탔고 그 결과 백두대간은 피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한반도의 뼈대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했다.

뒤를 이어 일반 산악인들이 줄줄이 백두대간 종주의 장도에 올랐다.

지금 백두대간은 산행에 대한 기초지식과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종주를 할 수 있을 만큼 길이 잘 나 있고 길표시도 완벽하게 마련돼 있다.

백두대간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지도상 거리로 6백40여㎞, 실제거리는 1천2백여㎞에 이른다.

산행에만 50일이 걸리며 배낭 무게만도 20㎏이 넘는다.

말없는 산과 끊임없이 내면의 대화를 나누며 묵묵히 혼자 가는 길로 어떤 이들은 히말라야의 고산을 등반하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고 말한다.

여름철의 뙤약볕과 싸우며 걸어야 할 때도 있고, 하루 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내야할 때도 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침낭 하나에 의지해 긴긴 겨울밤을 지새야 할 경우도 있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악천후 속에 오도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헤매야 할 때도 있다.

며칠을 가도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할 때도 있고 길 아닌 길로 들어서 가시덩쿨에 온몸을 뜯겨야 할 때도 있다.

인생의 모든 고통을 죄다 풀어놓은 듯한 쓰라린 순간들이 매일매일 종주자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종주자들은 말한다.

그 고통의 순간들이 결국 종주를 마치게 해주는 힘이라고. 종주를 마치고 진부령으로 내려오는 순간 왈칵 눈물이 치솟아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고 대부분의 종주자들은 술회한다.

그 모든 고통의 순간들이 너무도 또렷히 떠오르지만 언제나 말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백두대간의 어머니 품같은 따뜻함에 뒤돌아 뛰어가 안기고 싶은 충동에 젖는다고 한다.

산악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종주를 꿈꾸는 백두대간. 백두대간 종주는 단순한 산줄기를 밟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수천년 동안 내려온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지리관을 느끼며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확인케 해준다.

또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 국가로서 백두대간은 통일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자리한다.

우리가 종주할 수 있는 것은 백두대간의 절반도 안되는 남한구간이다.

민족은 두개의 체제로 나뉘어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철조망이 허리를 조이고 있지만 백두대간은 결코 민족의 하나됨을 포기하지 않는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모든 산악인들은 꿈꾼다.

산마루를 넘는 나의 발길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기를. 통일이 되면 반드시 백두대간을 따라 백두산까지 가서 민족의 하나됨을 축복하겠다고.

김산환 <산악인. '사람과 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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