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화의제도,부실기업주 재산은닉 부작용 많다"대법원 강영호부장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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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진로.기아등 부도위기에 몰린 재벌기업들이 잇따라 신청하는 바람에 마치 부실기업 회생의 비방 (秘方) 처럼 인식되고 있는 화의 (和議) 제도를 현직 법관이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고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강영호 (姜永虎) 부장판사는 법률신문에 실린 '화의제도, 도산된 기업의 구세주인가' 란 제목의 글을 통해 "현행 화의제도는 본래의 목적인 회사재건보다는 파산선고를 일시적으로 모면하거나 부실기업주의 재산은닉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고 지적했다.

현행 화의법이 규정하고 있는 화의제도란 기업이 도산위기에 처했을 때 채권자 동의와 법원의 허가를 거쳐 채무액의 변제를 일정기간 유예시켜주는 제도. 파산이나 법정관리와는 달리 화의기간동안에는 기업주의 경영권이 그대로 유지된다.

姜부장판사는 이러한 화의제도의 문제점을 크게 다섯가지로 나눠 지적했다.

첫째 화의공고로 인해 채무초과 상태가 널리 알려지고 금융기관에서는 더이상 자금을 조달치 않게 돼 신용불안 상태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 또 화의개시의 효력이 일반채권에만 한정되고 저당권.질권등 담보권에는 미치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姜부장판사는 "기아자동차의 경우에도 막대한 담보권을 가지고 있는 은행과의 합의가 없을 때에는 정상화의 길을 걷기 힘들다" 고 예상했다.

姜부장판사는 이밖에 채무자의 독단으로 인한 폐해 가능성을 경고했다.

화의조건이 전적으로 채무자의 의사에 달려 있어 채권자는 채권의 감액.유예.면제등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채무자는 경영권 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한 조건을 내걸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화의조건 이행을 위한 강제력이 없고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의의 이행은 전적으로 채무자의 의지에 달려 있어 이행이 안됐더라도 기업의 대표이사등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姜부장판사는 "일본에서도 화의가 성립된 후 화의조건이 완전히 이행된 경우가 거의 없다.

채무자들이 처음 한두차례만 이행하는척 하다가 그만 두고 만다" 고 소개했다.

결국 화의제도는 도산한 회사를 재건해주는 만능의 제도가 아닐뿐더러 채무자의 농락에 의해 많은 채권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게 姜부장판사의 결론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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