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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10년 후를 꿈꾸는 난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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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적하던 변방 도시에 개발 붐이 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닝 시내 3㎢ 규모로 건설 중인 ‘아세안 국제비즈니스센터(東盟國際商務業區)’에서 답을 얻게 된다. 이곳 컨셉트는 ‘아세안10+3(10개 아세안 국가 및 한·중·일)의 작은 타운’이다. 중국은 아세안 국가와 한국·일본 등 민간 기업에 부지를 거의 공짜 가격으로 분양했다. 땅을 나눠 줄 테니 와서 건물을 짓고, 돈을 벌라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었다. ‘정부 대표기구가 들어설 건물을 한 채 지어 본국 정부에 기부채납하라’는 요구였다. 계획대로라면 베트남 하노이의 이웃 도시 난닝에 내년께 아세안10+3 국가의 정부 관련 기구가 들어선다.

난닝 취재에 동행한 한 기업인은 ‘1990년대 초 상하이 푸둥(浦東)을 보는 듯하다’고 말한다. 당시 푸둥 역시 허허벌판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크레인뿐이었다. 그러나 개발 10년이 흐른 2001년, 푸둥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국제비즈니스센터로 부상했다. 푸둥이 그랬듯 난닝 아세안국제비즈니스센터 역시 10년 뒤를 겨냥한 작품일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지 당국자들은 이를 숨기지 않는다. 광시자치구 해외투자유치국의 중수린(鐘樹林) 부국장은 “지금은 아세안 관련 회의가 주로 싱가포르나 자카르타 등에서 열리지만 10년 후에는 난닝에서 열릴 것”이라고 자신한다. ‘아세안 회의를 중국에서 연다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준비된 답을 내놓는다. ‘아세안 경제의 중국의존도가 높아진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아세안은 중국의 남진(南進)정책과 일본의 서진(西進)정책이 ‘十’자로 교차되는 곳이다. 아세안을 품으려는 두 나라의 경쟁은 치열하다. 지금은 일본이 우세를 보인다고 하지만 10년 후는 장담할 수 없다. 2006년 열린 하노이 APEC에서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이 중국을 ‘빅 브러더(Big Brother)’라 했던 것은 세력 경쟁의 흐름이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난닝은 그 ‘남진’ 전략의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치밀한 준비에 놀랄 뿐이다.

외교뿐만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10년 프로젝트’를 쉽게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중국의 추가 내수 부양 조치 발표를 고대하고 있던 지난 1개월 동안 중국이 내놓은 것은 내수 부양책이 아닌 ‘10대 산업 진흥계획’이었다. 자동차·철강·조선 등 10대 핵심 산업을 향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청사진이다. 핵심은 ‘자주창신(自主創新·기술자립)’과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做大做强)’다. 막대한 규모의 기술 개발 지원책, 주요 업체 간 인수합병(M&A) 방안이 후속 조치로 발표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경제위기를 틈타 해외 시장에서 원자재·기술 쓸어담기에 나서고 있다. 호주의 아연광산 리오틴토에 195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지난 2월에만 6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돈 쓸 곳은 국내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당장 급하지 않은 전략상품에 손을 댄다. 내일이 아닌 10년 후를 계산한 행보다.

세계 경제에 끝나지 않는 위기는 없다. 위기가 끝난 후 새롭게 짜일 국제 정치·경제의 패러다임에서 누가 승자로 남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중국은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있고, 강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하나둘씩 갖추고 있다. 그들의 성장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정체해 있기 때문이리라. ‘중국을 이길 수 없다면 합류(合流)하라’.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했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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