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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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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울'은 일반명사이자 고유명사다. 일반명사로서 서울은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곳이란 뜻이다. 고유명사로선 북위 37° 33' 동경 126°58'주변의 605.41㎢의 면적에 1027만명이 거주하는 한국의 특정 땅이름이다. 앞으로 신행정수도법에 따라 천도가 진행되면 서울(일반명사)은 충청도로 옮겨가고 다른 서울(고유명사)은 남아 있을 것이다. 서울의 분열이다.

서울은 원래 통합권력이었다. 서울이란 말은 2000년 전 경주 일대에서 처음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유사에 서벌(徐伐)이란 한자로 기록돼 있다. 서벌은 곡식이 풍성한 들판이란 뜻이었다고 한다. 서벌은 왕국(뒤에 신라로 바뀜)의 이름이면서 수도였던 경주의 이름이었다. 서울이란 말은 발생 때부터 왕국이면서 수도이면서 경주를 지칭했다. 나중에 왕국의 수도라는 일반적 뜻만 남게 됐다.

서울이 지금의 위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공식 사용된 것은 광복되던 1945년부터였다. 조선조 500여년 동안엔 한성(漢城.1394~1910)이 서울의 이름이었다. 성(城)자가 뒤에 붙은 것은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성으로 천도하자마자 실제로 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돌성은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대학로 뒷산)을 잇는 17㎞ 길이다. 왕궁을 북악산 밑에 지어 남향을 하게 할지, 인왕산 기슭에 지어 동향을 하게 할지, 풍수지리의 맞수였던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치열하게 논전을 벌였다. 정도전이 이겼다. 그 연장선상에서 청와대 현 위치도 북악 아래의 남향이 됐다.

무학대사가 "북악이 마주보는 관악산에서 화기가 뻗쳐 우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자, 정도전은 "북악과 관악 사이에 흐르는 한강이 막아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래도 왕궁을 지을 때는 화기를 염려해 불을 잡아 먹는다는 전설의 동물, 해태의 석상을 세웠다. 서울이 한반도 역사의 여러 왕국 중 최초의 수도가 된 것은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 때다. 온조 시조가 서울의 풍납동에 도읍을 두었다.

돌이켜 보면 서울은 자연이면서 권력이었다. 왕조보다 길고 정권보다도 강했다. 서울은 그 자체가 한반도의 역사였다. 그런 만큼 중앙집중적이고 특권적 지위에 있었다. 서울을 옮긴다니까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지는 까닭이다.

전영기 정치부 기자

*** 바로잡습니다

6월 22일자 35면 '분수대' 중 서울의 위치는 북위 37° 33' 동경 126°58'(시청 기준)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