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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한국의 손길 닿자, 태국 실크가 피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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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패션쇼를 단순한 의상발표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76)이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4회 연속으로 올림픽조직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패션쇼를 열었다. 2006년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세계 최초로 패션쇼도 개최했다.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발리 패션 위크’에선 전야제 행사로 그의 패션쇼가 열렸다. 앙드레 김은 지난 7일(현지시간)엔 태국 방콕에서 한국·태국 수교 50주년 기념 패션쇼를 열었다. 주태국 한국대사관이 주최하고 태국 왕실이 특별후원한 행사였다. “나의 모든 패션쇼는 초청에 의해서만 이뤄진다”는 그의 패션쇼는 올해도 중국 상하이 등지에서 계속 열릴 예정이다. ‘기념 패션쇼를 열어 달라’는 세계 곳곳에서의 러브콜을 즐기는 앙드레 김. 그가 어떻게 수십 년째 대한민국 대표 ‘문화외교사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인지 방콕 패션쇼 현장에서 살폈다. 

‘대한민국 문화외교사절’로 불리는 앙드레 김(76)이 7일 태국 방콕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앙드레 김의 대표 스타일인 당초무늬 아플리케(천 위에 다른 천이나 가죽을 덧대 오려 붙이고 둘레를 실로 꿰매는 수예 기법) 의상이 패션쇼 무대를 장식했다. [방콕=연합뉴스]

방콕=강승민 기자

패션쇼가 열린 방콕 시내 중심가의 센타라 그랜드 앤드 방콕 컨벤션 센터에는 1000여 명의 관객이 들어찼다. 그중 3분의 2는 1500~2500바트(7만~12만원)짜리 유료 입장권을 산 관객들이다. 태국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앙드레 김 패션쇼에 대한 태국인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100여 명의 한국·태국 취재진과 블룸버그·이코노미스트·AP 등 유명 해외 언론의 취재진이 몰려들어 수퍼스타의 콘서트라도 열린 것처럼 취재 열기도 대단했다.

패션쇼 리허설에서 앙드레 김(右)이 메인 모델인 영화배우 이준기(左), 태국의 유명 여배우 메이 피차낫(中)에게 연출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패션쇼 시작 전부터 관객들의 환호 역시 컸다. 쇼 시작 전 마지막 현장점검을 위해 런웨이 근처에 앙드레 김이 나타나자 미리 입장해 있던 태국 관객들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고교생 판 사이(15)는 “이준기 등 한국 연예인 때문에 앙드레 김을 알게 됐는데 그를 직접 본 데다 사진까지 함께 찍다니 믿을 수 없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패션쇼의 최고 귀빈은 태국의 솜 사와리 왕세자비였다. 왕세자비는 새로운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힘찬 박수를 보냈다. 그가 가장 흐뭇한 미소를 보인 것은 태국 실크로 만든 보라·연두·분홍 등의 투피스 차림 모델들이 무대에 섰을 때다. 시종일관 만족감을 나타낸 왕세자비가 또 한번 만면에 웃음을 띠며 무대를 바라봤다. 태국 왕실의 고대 설화와 문화 유적이 전사된 10여 벌의 드레스가 무대에 오른 제3부 무대 ‘태국 왕국의 영원한 영광이여’가 개막됐을 때였다. 태국 관광청 산선 응아오룽(동아시아국) 국장이 말한 “앙드레 김의 패션쇼는 한국인들에게 태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알릴 수 있는 기회”임이 증명된 순간이다.

앙드레 김은 4부 ‘한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이야기’에선 우리 문화유산을 프린트한 드레스를 태국 관객에게 소개했다. 초청국의 전통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인 다음 자연스럽게 태국 관객들에게 한국 문화를 전파한 것이다. “앙드레 김은 패션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해외에 알림으로써 양국의 문화교류를 가능케 한다”는 정해문 주태국 한국대사의 말에 꼭 들어맞는 장면이었다.

패션쇼를 본 회사원 이즈라랏 나폼베자(35)는 “앙드레 김의 패션쇼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도 갔었다”며 “형형색색의 드레스가 정말 맘에 들었다. 1년 내내 여름인 이곳에서 눈이 내리는 가운데 펼쳐진 패션쇼 무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앙드레 김의 패션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수많은 한류 스타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옷 자체가 너무 좋다. 사고 싶지만 비쌀 것 같다”며 웃었다.

앙드레 김 패션쇼의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하는 남성 메인 모델로 영화배우 이준기가 무대에 서자 패션쇼장의 열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이준기를 무대에서 직접 볼 수 있다고 해서 왔다”고 말한 웬디 호는 ‘싱가포르 이준기 팬클럽 회장’이다. 그는 “캄보디아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이미 패션쇼를 연 앙드레 김을 잘 알고 있다. 한류 스타가 그의 패션쇼에 소개되고 또 그의 패션쇼를 통해 다른 한류 스타가 탄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앙드레 김과 한류 스타가 함께하는 패션쇼가 아시아인들에게 한국의 매력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문화외교사절로서 앙드레 김의 위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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