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ME캠페인' 합숙통해 부부사랑 재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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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문제청소년의 뒤에는 문제어른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건전한 부부사랑을 통해 이 사회의 규범을 바로 잡아나가자는 취지로 도입된 천주교의 '매리지 엔카운터 (ME.Marriage Encounter) ' 캠페인. 20년의 연륜을 쌓으면서 국민적 운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캠페인의 목표는 진솔한 대화를 통해 부부 사이를 더욱 원만하게 가꾸어 나가자는 것. 그래서 문제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프로그램과는 크게 다르다.

각 교구단위로 금요일 오후부터 2박3일간 서로 얼굴을 모르는 부부 30여쌍이 한자리에 모여 합숙하면서 사랑의 편지쓰기 등을 통해 대화의 기교를 익힌다.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부부는 약 4만5천쌍. 이중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부부도 30%나 된다.

최근들어 신청자가 크게 몰리는 바람에 신청을 하고도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다시 교육을 희망하는 부부도 많지만 한번 교육후 3년이 지나야 자격이 주어진다.

서울지역에서만 현재 1천쌍 정도가 대기상태. 지난 26일에도 서울교구에서는 장충동의 성베네딕트 피정의 집에서 30쌍이 교육에 들어갔다.

이렇게 교육을 마친 부부들은 각 성당 단위로 별도 모임을 통해 부부간 대화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2년에 한번씩 서울에서 전국적인 행사를 펼친다.

28일에도 전국에서 2천5백쌍이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 모여 또다시 부부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부부가 나란히 얼굴을 맞대는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쑥스러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참석자들이 서로 얼굴을 모르도록 1회 교육에 각 성당 단위로 한쌍을 원칙으로 정했기 때문에 부부들은 배우자 앞에 솔직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부부가 털어놓은 사랑의 편지 한 대목을 훔쳐보자. "마음 속에 곪아터질 것 같은 종기를 안고 살았는데 그 독기가 어쩌면 그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까. " "지난날 우리 부부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소. 당신의 손을 붙잡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던 감동은 영원히 잊지 못할거요. " 부부사랑을 새롭게 확인하는 순간의 환희와 반성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이 캠페인은 1958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에 의해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청소년 사목을 담당했던 칼보 신부의 눈에는 부부간의 원만한 의사소통이 청소년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비쳤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10년뒤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활발하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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