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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기아 주가 올라야 하는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의 주식시장은 참 이상하다.

월스트리트의 일류 투자전문가들도 종잡을 수 없다고 혀를 내두른다.

자기네들 기준으로는 올라야 할 주가는 안 오르고 내려야 할 것은 안 내린다고 불만이다.

문제의 기아자동차 주가도 그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나 싶다.

최근 1년동안 가장 높았던 것은 지난해 12월의 1만8천2백원.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한때 8천5백60원까지 폭락했다.

한동안 회복세를 보였으나 화의 (和議) 신청이 나오면서 다시 내림세다.

그러나 기아자동차 주가는 당연히 올라야 한다.

투자자들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기아문제를 둘러싸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기아그룹은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10조원의 엄청난 빚을 걸머진채 하루하루 연명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 혼자서 분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계열사에 서준 빚보증이 무려 3조7천억원이나 된다.

그러니 주가가 폭락할 수밖에.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게 아니다.

기아자동차에는 결정적인 희소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유가 어찌됐든간에 정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기아자동차는 살리겠다는 뜻을 밝혔고, 채권은행들도 일단 채무상환 유예쪽으로 돌아섰다.

뿐만 아니다.

자동차의 목을 눌러 왔던 계열사 문제도 털어내줄 준비를 갖추고 있다.

추가대출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옴짝달싹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던 기아자동차로서는 이런 호재 (好材)가 어디 있겠나. 빚더미로부터 당분간이나마 해방되고, 골치아픈 계열사 문제가 비록 외부의 힘에 의해서지만 자동 해결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기아자동차의 고민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 주가는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주가반등을 억제하고 있는 첫번째 원인제공자는 기아 자신이다.

김선홍 (金善弘) 회장을 비롯한 기아측의 태도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부와 채권단이 기아를 살려주겠다는 의지와 방법론을 음으로 양으로 제시하고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정부나 채권단이 기아자동차를 살린다는 것은 기아측의 요구를 거저 들어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된다.

부실경영의 책임추궁과 납득할만한 자구책마련을 전제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이건 음모도 뭐도 아니다.

그저 일반 상거래에서도 통용되는 상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독 기아에만 엄청난 특혜가 주어지는 것이며, 형평성이나 공정성은 엉망이 되고 만다.

따라서 기아가 채권단의 요구를 상식선에서 수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기아자동차로서도 그래야 하루빨리 소생의 수순을 밟아나갈 수 있다.

채권단 요구를 거부하며 버텨나가는 기아측도 죽을 지경일 것이다.

기아자동차는 빚청산은 고사하고 당장 2천억원가량의 긴급대출이 필요하다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기아 스스로가 부른 고초다.

지난 7월에 채권단 요구를 흔쾌히 수용했더라면 한결 쉽게 일이 풀려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아측은 스스로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지를 따져 흥정에 나서야 한다.

아무리 야속하고 밉더라도 흥정의 대상은 빚쟁이인 동시에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들이다.

이들과의 흥정을 통해 빚을 유예하고 더 필요한 돈을 시급히 빌려내야 기아를 살려나갈 수 있다.

이런 마당에 오늘의 기아를 있게 한 김선홍 회장의 사표문제가 지금까지도 채권단의 기아지원에 가장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아측이 22일 화의를 전격 신청했으나 이것 역시 金회장 문제가 선결되지 않고서는 채권단이 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데드라인인 부도유예 만료일이 꼭 1주일 남았다.

지금 기아에 필요한 것은 '돈' 이다.

기아를 가장 사랑할 최고의 전문경영인 金회장이 그 돈 마련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불사할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이장규 경제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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