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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속으로]7. 끝. 서브컬처 대중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일본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군단은 뭐니뭐니해도 프로야구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다.

자이언츠의 팬은 무려 4천만명. 전 경기는 전국으로 생방송되며 항상 2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다.

그런데 올해 이 구단의 개막전 시구를 맡은 사람은 '텔레비전의 꽃' 으로 불리는 아무로 나미에였다.

이에 반해서 인기 최하위의 '일본햄 파이터스' 와 '롯데 마린스' 의 개막 시구식에는 성우 시이나 헤키루가 참석했다.

시이나 헤키루는 성우이면서 4장의 CD앨범을 1백만장 넘게 판 가수다.

그러나 그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TV같은 대중매체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마이너 트렌드형이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는 프로야구 구단과 가수의 만남. 이는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마이너 트렌드가 엄연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면이다.

성우 출신 가수로 앨범판매 순위 10위 안에 진입한 사람은 10여명이나 된다.

이들의 인기비결은 일본의 게임기와 관련이 깊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자오락기의 주류가 닌텐도에서 소니 (플레이 스테이션) 와 세가 (새턴) 로 바뀐 것과 큰 관련이 있다.

닌텐도의 패미콤 시리즈는 기억용량이 최대 8메가에 불과했다.

그러나 94년 소니와 세가가 개발한 32비트 게임기에 CD롬 방식을 채용함에 따라 기억용량이 일거에 6백40메가로 확대되었다.

이제 성우의 육성을 게임내용에 담는 것이 가능해졌고 히트한 게임의 여주인공 목소리를 담당한 성우들이 덩달아서 인기를 얻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시각을 더 넓혀서 보면 성우가수들의 출현은 서브컬처 혹은 얼터너티브 컬처 (대안문화) 라고 부르는 마이너 트렌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TV나 신문같은 대중매체를 장식하고 CD판매차트의 상위를 점령하는 메이저 트렌드의 가수들과 달리 소수의 열광적인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가수들은 많다는 의미다.

만화영화의 주제가들을 헤비메탈로 편곡한 애니메탈 (애니메이션과 헤비메탈의 합성어) 의 CD판매량이 이미 20만장을 넘어섰다.

오랫동안 소극장을 주무대로 활동해 온 현란한 의상의 '비주얼 록' 그룹의 음악이 소극장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올해는 인기순위 1위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대형 레코드점들은 이제까지는 거들떠 보지 않았던 라틴아메리카.홍콩.한국.동남아시아 음악 별도매장을 설치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모두 TV와 히트 랭킹의 상위만 봐서는 인식하기 어려운 마이너 트렌드의 일부분들이다.

20~30대 서브컬처의 소비군단은 60년대말 미국의 히피문화 또는 카운터 컬처의 지지자와 비슷한 성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대중매체를 동원한 현란한 대량선전에 현혹되지 않으며 심지어 기피현상마저 내보인다.

대신 동호인끼리 정보교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다.

여기에는 인터넷이 큰몫을 한다.

미국의 히피와 하나 다른 점은 그들의 구매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2백24만원 상당의 에반겔리온의 여주인공 '레이' 인형이 팔리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가요를 소개하는 일본어 인터넷 홈페이지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중의 하나인 이치노바시라는 자칭 한국가요 전문가가 띄운 사이트는 올들어 9천6백명 이상이 접속한 기록이 있다.

이는 '노래방에 가자 - 코리안 팝스의 현재' 라는 동호인 잡지 (20페이지 가량의 조악한 잡지로 가격 1만5천원) 의 선전용으로 개설한 홈페이지다.

이게 한국의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일본인을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면…답답하기만 하다.

서브컬처를 향해 내닫는 일본의 새로운 경향이 우리에겐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 시장을 그냥 버려두긴 아쉽다.

열린 사이버공간 인터넷, 그리고 홈페이지를 통해 실제 거래를 행하는 통신판매 - .방편은 많은데도 우리는 무관심하다.

김지룡 <문화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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